초오서 문학의 다양성과 민중성
Geoffrey Chaucer 는 1943~1400년 사람이다. 담시의 대가로 ‘The Canterbury Tales'는 14세기의 마지막 25년 동안에 쓰여진 그의 문학 생애의 정점이다. 이 시는 근대 영어의 모체가 되는 런던 토속어로 영시의 운율을 확립했기 때문에 근대영시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영국 전역을 휩쓴 흑사병은 장원의 해체와 시장경제의 가속화를 촉진시켰다. 또한 자영농민들의 부가 축적되고 도시에 시장이 형성되면서 민주적이고 소박한 농민공동체로 이행하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언어의 혁명이었다. Geoffrey Chaucer는 당대의 계급갈등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보여주는 시인도 드물 것이다. 소년 시절 그는 라이오넬 왕세자의 저택에서 시종으로 일했는데 그 결과 초기시들은 프랑스 궁정문화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러나 중년이 되면서 그의 문학은 점점 더 영국적이고 민중적이 되어갔다. 이러한 변화는 그의 시에서 수사적 표현들이 점차 퇴조하고 속담이나 하층계급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관용어를 즐겨 사용하는 경향에서 뚜렷이 나타낸다. The Canterbury Tales를 쓰고 있었던 당시 자영농민들의 문화와 삶의 방식이 굳건히 뿌리내리고 있었다. 그래서 The Canterbury Tales에서 향사, 여장부, 방앗간주인, 장원 청지기 등을 비교해볼때 기사양반, 견습기사, 신학생, 수녀원장 등 상류사회 인사들은 다소 비현실적인 인물로 보인다.
The Canterbury Tales의 서두에는 상쾌하고 쾌활한 봄의 묘사 이후에 이어지는 일상적인 산문의 세계를 나타낸다. 그리고 초오서의 진정한 의도가 당대 인간들의 다양한 삶에 대한 관찰과 그가 갖추고 있었던 문학에 대한 지식을 결합하고 기존의 문학 형식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었다. 기사도적 사랑과, 기사무용담, 동물우화, 음담패설류, 순교이야기, 유명인사 타락에 따른 교훈이야기, 훌주정뱅이의 운명에 대한 교훈을 담은 비유등 중세의 전형적인 문학장르들이 거의 다 동원되었다.
The Canterbury Tales는 뭐니뭐니 해도 그 엄청난 포괄성과 다양성이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며 장점이다. Chaucer는 시종일관 방심한 듯 한 자세로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몸짓과 생김새와 논쟁의 어투를 사실적으로 전달하며 이야기 순서를 정하는 데도 작가의 의도를 배제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 처음에는 제비뽑기로 결정하였다. 또한 순례자로서 발언하고 있는 부분에서도 독자들에게 취사선택해서 읽을 수 있는 다양성의 문을 열어뒀다. Chaucer는 민중들 사이에서 구전되던 이야기들을 좀더 정교하게 다듬고 세련시켜나갔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거기에는 여전히 민중들의 투박한 삶의 모습이 간직되어 있고 더구나 그것들은 풍성한 일상적 관용어들로 힘차게 표현되고 있다.
The Cantervury Tales에는 특정의 이야기에 대한 순례자들의 칭찬이나 동의나 반대의견이나 심지어는 논쟁과 같은 반응들과도 접하게 된다. 이러한 반응들은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거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시인이 삽입해놈은 연결부분들에서 나타나며 이는 순례자들 사이의 관계는 다음에 전개될 이야기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또한 민중적 현실의 실상을 대단히 리얼하게 보여주는 이야기로 ‘방앗간 주인의 이야기’가 있다. 파블리오는 중세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문학장르로서 하층계급이나 시민의 삶을 풍자적인 방식으로 다루면서 음담패설을 통해 폭소를 자아내게 하는 이야기이다. 앨리슨이 비록 도시인으로서 돈의 가치를 익히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녀의 외모와 옷차림은 당대 농민들의 삶과 일상적 표현을 반영하는 일련의 직유들을 매개로하여 묘사되고 있다. 특히 그녀의 옷차림은 검정색과 흰색의 대비에 의해 독자들의 의식에 선명하게 부각되고 있는데 희모자 밑에 걸려있는 그녀의 눈썹은 모과나무 열매처럼 까맟고 하얀 치마의 가장자리는 석탄처럼 까만 비단천으로 장식되고 앞치마는 아침에 방금 짜낸 우유처럼 하얗다. 이렇게 선명한 흑백의 대비를 보여주는 일련의 비유들은 이른 봄날 까만 줄기에 하얀 꽃을 만발하게 피운 벚나무의 이미지에서 절정에 이른다. 앨리슨은 족제비처럼 날씬하고 양철처럼 부드럽고 헉간 처마에 낮아 있는 제비처럼 달콤하게 노래하고 망아지처럼 생기발랄하고 변덕스럽다. 또한 그녀의 숨결은 이른 봄 초원의 상큼한 풀내음, 혹은 헉간이나 들판에 쌓아놓은 사과냄새처럼 달콤하다. 직유가 사용되고 있다. 처음에는 의심많은 남편이 젊은 아내를 우리 속에 가두어 잘 감시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결국 앨리슨은 족제비이고 남편은 우리 속에 갇힌 집토끼의 신세로 전락하며 그녀는 이러한 야생동물의 비유에 의해 다소 악으로 연상케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때 앨리슨은 자상한 아내이고 상대방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고 존중하는 연인이며 농담 잘 하는 시골 색시이다. 넘쳐흐르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중구난방인 것처럼 보이지만 기본적으로 길들여질 수 있는 여인인 것이다. 그러므로 앨리슨은 금욕주의와 봉건주의 체제의 야만성을 벗어나고 있었던 선량하고 건강한 영국 자영농민의 모습을 상징하는 인물인 것이다.
중세 민요 ‘에드워드’
민요란 어떤 사건이 문자를 익히지 못한 민중들 사이에서 구전되어 내려오는 설화조의 노래이다. 민요는 에드워드, 페트릭 스펜스 경, 랜들경 등 이있다. 이러한 민요들은 사건의 결말에 가까운 클라이박스의 한 장면을 포착하여 이 장면에 초점을 맞춘다. 사건을 제시하는 방식은 일반적으로 서술적 방식이 아니라 두 사람 사이의 대화를 통한 극적 방식에 의존하며 장면이나 사건에 대한 묘사는 극도로 절제된다. 민요의 극적 효과를 고양시키는 장치로는 후렴구와 점층적 반복의 방식이 거의 예외없이 사용된다. 점층적 반복이란 동일하거나 다소 변형된 구절과 생각이 질문과 대답의 형식 속에 엄격하게 반복되면서 서서히 비극적인 결말로 발전하게 하는 장치이다. 인습적이고 상투적인 표현, 후렴구와 점층적 반복 등 전통민요의 ‘고정된 공식들’은 가창자의 기억을 용이하게 하고 청중의 긴장감을 고조시킬 뿐만아니라 비극적인 사건에 대한 가창자의 감정이나 판단이 노출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Edward는 청중이나 독자에게 주는 강력한 감동 대부분이 충격에 의존하고 있다. 민요의 중간 부분과 끝 부분에서 두 번에 걸쳐 충격적인 광경이 제시되지만 Edward가 부친을 살해했다고 고백하는 중간 부분은 모친에게 저주를 내리는 끝 부분보다는다소 덜 충격적이다. 앞부분을 통해 애견이 된다. 매를 길들이는 일은 중세 귀족 사회에서는 보편화된 스포츠로서 매와 주인 사이에는 일종의 긴밀한 정신적 유대관계가 존재했다고 한다. 거기다가 중세귀족이 자기의 애마를 죽이는 것을 볼때 점점 엄청나고 끔직스런 일이 벌어질것을 예상한다.
아들과 어머니의 대화를 통해 비극적인 사건이 점층적으로 발전하다가 정점에 이르는 과정에서 이 민요는 시종일관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다. 서로가 회답하는 과정에서 알수 잇다. 하지만 에드워드의 감정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는 슬픈 표정을 짓고 있고 아버지에 대해 소중한 감정을 품고 있으며 공동체에서 추방된 후의 쓰라린 삶을 두려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감정표현들은 그가 저지른 엄청난 행위에 충분히 부응한다고 볼수 없다. 어머니의 질문에 시종일관 예의 바르게 대답한다. 민요에서 실제로 부각된 시간은 현재의 짧은 한순간의 질문과 일곱 개의 대답 중에서 네 개의 질문과 대답은 미래와 관계하고 있다. 과거는 마지막 행 이전까지는 완벽하게 베일에 가려저 억압되어 있다가 마지막 순간에 혹독하고 잔인한 보복의 성격을 띠고 우리를 엄습하게 되는 것이다.
르네상스적 인간형의 출현 : Thomas Wyatt
16세기가 되자 15세기 도시 상인의 자손들은 부와 교양을 갖춘 신사로서 영국의 새로운 계급으로 부상하게 되었고 이들이 자본을 앞세워 영국 농촌에 강요한 자본주의적 농업정책은 15세기 자영농민들의 소박한 민주적 공동체와 농민문학의 전통을 뿌리채 뒤흔들어 놓았다.
Thomas Wyatt의 시 They flee from me의 1연에서 사용된 they 나 them 이 2연과 3연의 she 와는 다른 여러명의 여인들인지 아니면 단순히 she 가 비유적으로 제시하는 장치로 동원되고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르네상스 이후 영국의 귀족사회에서 사냥감으로 사슴을 다량으로 사육했다는 사실을 미뤄봤을때 they 는 앞의 소네트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연인을 사슴에 비유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seek 는 사냥개에게 사냥감을 추적하라고 주인이 명령할 때 사용하는 용어이고 stalk는 사냥감에게 몰래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gentle, tame, meek, take bread at my hand는 모두 길들여진 동물의 성질을 range는 사냥감을 찾아서 배회하는 사냥개의 모습을 change는 사냥개가 사냥감을 추적하다가 우연히 마주친 다른 동물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때는 사냥의 대상이었고 붙잡힌 후에는 잘 길들여진 사슴이 이제는역으로 사냥의 주체가 되어 사냥감을 찾아 돌아다니는 역설적인 상황이 확립된다. 2연은 붙잡힌 사슴인 그녀가 시인을 유혹하는 관능적인 장면에서 그녀는 시인을 dear heart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 두 단어는 각각 deer과 hart 를 연상시킨다. 3연은 첫행 It was no dream I lay broad waking의 음절 탈락 현상과 함께 강세가 연속적으로 이어져 2연의 관능적인 체험이 한겆 환상이나 백일몽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던 사건임을 강조하는 동시에 믿기어렵다는 시인의 느낌을 전달한다.
르네상스 상황을 보았을 때 합리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요행과 우연에 의해 비합리적으로 운행되는 르네상스 시대의 예측할 수 없는 세계를 보여준다. Thomas Wyatt 는 구체적이고 세밀한 세부 묘사에도 불구하고 이 시 전체를 지배하는 환상적인 분위기는 혼란스런 세계 속에 살고 있는 비합리적인 인간들의 내면의 모습인데 인간의 마음 속 깊이 존재하는 욕망과 두려움을 어느 시대보다도 탁월하게 보여주었던 르네상스 시대 영문학의 특징을 보여준다.
They flee from me에서는 문화장치들이 있는데 16세기 영국 궁정은 후원제도가 있어 시인들이 정치행위의 일부로서 시를 지었다. Thomas Wyatt는 시를 짓는 일을 공직 수행에 부수되는 여흥이나 교양 정도의 부차적인 행위로 간주하였다. 그들은 군주나 영향력있는 귀족을 찬양하는 시를 지어 그들의 관심을 끌고 권력의 핵심으로 다가가려 했다. 하지만 총애를 벗어나면 좌절과 환멸감이 시의 틈새 사이 사이로 암암리에 노출된다. 사모하는 여인의 아름다움과 미덕을 절대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와이어트의 페트라르카적인 자세가 나온다. 또한 상대방을 설득하는 이성적 언어보다는 감성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키케로적 수사의 언어를 사용한다. 그러므로 They flee from me는 민감한 언어로 포착한 환상적인 분위기와 복함적인 내용을 통하여 그러한 시를 잉태하고 통제하고 억압하는 당시 궁정과 귀족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But since that I so kindly am served I fain wiuld knw what she hath deserved.에서 kindly는 친절의미와 함께 신분의 의미가 강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단순히 성적 욕망과 갈등만을 보여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르네상스 초기 영국 사회의 전반적인 구성이 위기상황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종잡을수 없이 산만하고 충돌하는 사회구조의 산물로 이해해야 한다.
페트라르카적 비전의 전위 현상 : Sir Philip Sidney의 Astrophil and Stella
엘리자베스 시대 지식인들은 Sir Philip Sidney (1554~1586) 를 귀족인 갖춰야 할 모든 궁정적 특성과 개성을 두루 갖춘 인물로 보았다. 그가 전사 했을때 이상 주의가 쇠퇴하는 징후로 받아들이기까지 했다. 해석에 따라 빅토리아 여왕시대에는 그를 전형적인 신사로 에드워드 와조 시대에는 상반된 도덕적 섹O가 충돌하는 시대의 틈바구니에서 고뇌하는 지식인 그이후에는 덧없는 세계에서 내던져져 인간과 세계의 존재 의미에 절망하면서 생을 마감했던 그에게서 실존주의자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Astrophil and Stella 는 서정시 모음집이다. 소네트란 약강 5보격의 시행이 정교한 각운구조로 결속되어 있는 서정시를 말하는데 Sidney의 소네트는처음 8행과 나머지 6행이 명확히 구분되는 페트라르카적인 소네트 형식을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으나 6행단위에서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였다. 특히 마지막 2행은 동일한 각운으로 처리되면서 이전의 어조와 판이한 대조를 보여 그때까지 진행되어 온 시의 발전적 운동 전체를 뒤엎고 그 결과 시인과 여인과의 관계에서 야기된 시인의 내면상태를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한다.
소네트 90번의 경우 로라의 눈부신 모습이 처음부터 시의 전면에 부각되고 있다. 황금빛 머리칼을 미풍에 흩날리며 눈에는 광채를 발산한 여인이 여자 사냥꾼 차림에 등장하는 광경은 비너스를 연상케한다. 시의 내용이 과거시제로 제시되어 왔고 3행 A divine spirit a living sun was what I saw. 부터시간의 흐름을 의식하지 못하다가 과거시제가 부각된다. 그리고 체험해 왔던 초월적 순간은 더 이상 반복될 수 없는 역사적 과거로 멀어져간다. 이 소네트의 진정한 주제는 기억과 상상력의 명증성이다. 이 소네트는 서로 모순된 수많은 감정들 예컨대 고통스러우면서도 동시에 마음을 사로잡는 욕망이라든지 아름다움은 사라지게 마련이라든지 영속적이면서 신화적 성격을 띤 아르다움에 대한 갈망과 같은 감정들을 평형상태로 유지시킨다. 이때 서로 충돌하는 요소들은 해결하는 것은 기억인데 기억의 회상적 관점에 의하여 상상력은 시간과 욕망에 의해 위협받을 수도 있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의 순간을 회복할 수 있는것이다. Sidney의 경우 현실적 욕구와 갈등이 시의 전면에 끊임 없이 노출된다.
소네트 71번의 경우 처음 4행 단위에서 로라가 자연과 천상의 합작품이며 시인의 삶뿐만 아니라 미덕에 관심이 없는 눈먼 세상 사람들의 삶을 비추어 주는 유일한 태양이라고 하여 로라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과장된 찬사와 독자를 유인하는 초대의 어조에서 로라는 시인만이 누려야 할 사유물이 아니라 만인이 함께 공유해야할 공공의 자산이며 자연의 보고임을 분명히 한다. 6행 단위에서 시인의 욕망이 시간에 의해 순화되어 그녀의 육체적인 아름다움과 정신적인 미덕이 조화를 이룬 보편적 아름다움으로 승화되고 있음을 보게된다. 그러나 마지막 행에서 시인 자신에게 급격히 바뀌어 그때까지 유지되어 온 시인의 관점을 처음부터 재평가하라고 독자에게 요구한다. 처음 13행에서 보편적 아름다움과 미덕을 학슴하는 과정에 더 큰 과심을 보이고 이성과 지성의 작용 즉 플라톤화를 강조한다. 그러나 마지막 행은 지금까지의 공적인 어조에서 완전히 개인적인 어조로 바뀌면서 욕망을 분출한다. 이는 현실의 압박을 짊어진 이상주의자의 복합적인 감정이다.
Sir Philip Sidney는 어려서부터 궁정인은 국가의 최고선이라는 이상을 실현하고 또 그것을 공고히 하는 일에 성실히 임해야 한다는 프로테스탄트적 국가 윤리와 궁정적 분위기 속에서 교육받으며 성정하였다. 그는 호러스의 전통을 이어받아 시는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면서 동시에 도덕적 교훈이 그들의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해야 한다는 입장을 천명했는데 그에게 문학과 문학의 사회적 책임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Astrophil and Stella 는 그의 문학적 이상을 천명한 것일 뿐 아니라 당시의 정치, 문화적 역학관계에 대한 시드니의 지적, 정서적 반응이 반영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것이다. 르네상스 시대 완벽한 궁정인으로서의 명성이 죽은 후 시드니에게 부여된 것이긴 하지만 아스트로펠이 겪는 것과 유사한 방신으로 공적인 의무감과 개인적인 욕망사이의 분열을 체험하면서 그는 정치적 절망과 굴욕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따라서 Astrophil and Stella에서 볼 수 있는 사랑의 양면성이라든지 주인공의 머뭇거리는 태도라든지 지적요구과 감성적 요구 사이에서의 분열된 반응 이 모두가 궁정에서의 역할을 암시하는 부분으로 그의 정치적 사회적 좌절감을 발산하고 해방시키는 출구로 작용하였다.
Sidney 소네트에서 궁정의 정치구조 못지 않게 사랑의 역학관계를 전위시키는 것은 그의 뿌리 깊은 신교주의이다. 또한 남성들이 확립해 놓은 이념구조 내에서 발언하고 있다. 시인의 의식에 의해서 조작되거나 시인의 의식에 충돌하는 순간을 포착한 것들로서 긴밀한 내적 관련성이 없는 특성들로 연결되어있다. 그녀는 현실 속에서 살아 숨쉬는 생동하는 인간이 아니라 단순히 시인 연인의 욕망이 만들어 낸 차가운 구조물로 존재한다.
영원과 변화의 갈등 : Edmund Spenser
르네상스 초기에 영국의 지식인들은 유럽 여러 나라의 언어들을 차용하는 것이 유행이었고 그 결과 16세기 동안에 영어의 어휘수는 두배로 증가하였다. 이 과정에서 외국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에 대한 논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인간의 모든 영역에서 확장과 팽창이 기본 원리로 작용했던 이 시기에 언어의 차용은 걔속되었다. 그래서 새로운 어휘들이 정확한 의미를 부여 받고 자체의 생존을 이어나가기도 전에 폐기 되는 경우도 많았다. 작가들은 풍성해진 어휘들을 가지고 그들의 자유분방한 정신을 실험하고 싶은 욕구와 기회를 부여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사용하는 어휘가 계속해서 생명을 이어나갈지 확신을 가질 수 없을 때는 반복과 행간 설명 또는 유사한 단어의 동원을 통하여 그 단어의 의미를 강화하려고 노력하였다.
Edmund Spenser의 Amoretti 소네트 34번에는 두 번째 단위에서 첫 번째 단위에서 확립된 배와 별의 비유가 또다시 반복되면서 3행의 폭풍이 어둠과 불안, 숨겨져있는 위엄들로 의미가 확대되고 있다. 세 번째 단위에서 폭풍과 별의 비유는 또다시 동원되고 별의 의미 확대가 계속된다. 시인은 여인을 북극성에 비유한다. 11행과 12행에 비추다, 사랑스런 빛으로 별의 속성을 확대 재생산한다. 마지막 2행 결구의 첫행에서 구름낀 비탄의 나날이 어떠했는지 암시하는 유사어 수심찬과 불안한이 반복되고 둘째 행에서 구름낀 비탄이 남 모르는 슬픔과 슬픈 상념으로 확산되면서 균형잡힌 표현에 도달하고 있다. 이러한 언어 반복과 확대를 통해 시의 내용과 잘 부합한다. 또한 플라톤주의와 신플라톤주의의 관점에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Spenser에게 영원의 미와 이데아의 상징으로써 빛이다. 인간의 영혼은 누구나 육체의 형상을 타고 이 세상에태어나기 이전에 이데아의 빛과 함께 있었으나 현세의 감옥에 갇혀 이 빛을 볼 수가 없고 다만 사물의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희귀한 순간에만 이데아의 빛을 어렴풋이 회상할 수 있을뿐이다. 플라톤에 의하면 지상의 감각적인 미를 인식하는 행위는 영원의 미로 나아가는 점진적인 단계의 한 부분에 해당한다. 이 시에서도 영원의 아름다움을 향하여 나아가는 항로의 첫 단계에서 시인을 안내해 주는 것은 그녀의 찬란한 광휘와 사랑스런 빛이며 이 빛이 없이는 배가 표류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시인은 사모하는 여인은 실의에 찬 시인을 소생시켜 줄 수 있는 아름답고 고귀한 여인일 뿐만 아니라 그를 이데아의 세계로 안내하는 매개체의 역할도 아울러 수행하고 있음을 알수있다.
소네트 15번에는 플라톤 자신은 인간의 영혼을 끌어올리는 매개자로서 여성의 아름다움을 설정하지 않지만 중세가 되면서 플라톤주의는 성모숭배 사상과 결합되어 궁정과 봉건귀족의 저택을 중심으로 기사도적인 사랑의 양식으로 정착되었고 그결과 탐색의 주제와 더불어 기사문학의 중요한 구성원리가 되었다.
소네트 67번은 사랑하는 여인은 시인의 추적을 피하여 끊임 없이 도망다니다가 시인이 낙담하여 포기할 시점에 이르러 스스로 시인에게로 돌아오고 있다. 이러한 사냥의 비유와 함께 두 연인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의 갈등을 전투에 비유하는 하위 관습을 스펜서는기사도적인 진지한 자세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Amoretti의 전반부의 어조는 가볍고 경쾌하며 때로는 흥취를 한껏 돋구는 경우도 있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근엄하고 도덕적이고 교훈적인 어조로 바뀌고 있음을 우리는 느끼게 된다. 하느님과 군주에 대한 헌신과 진지한 시인이자 시민으로서 의무감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따라서 Spenser는 개혁종교가 뿌리내리기 시작하고 새로운 종교적 이념하에 건설된 절대왕정이 그 기반을 다져가는 과정에서 그 기초를 튼튼히 하는데 봉사할 것을 자임했던 계관시인이다. 그리고 그의 소네트가 페트라르카적인 분위기에 휩싸여 있던 시인들과 궁정귀족들과 여왕에게 성적 갈망을 결혼으로 완결되는 기독교적 사랑으로 종결지워 보여준 것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의 표현이자 그것들에 대한 요구이기도 하였다.
Faerie Queene는 르네상스 시대 작가들이 최고 형식으로 간주한 서사시를 채용한 작품이다. Spenser는 레스터 백작 밑에서 세속적인 행운을 시험하던 시기에 이탈리아 작가들을 능가하는 작품을 써 보려는 문학적 야망의 표현이자 그 시대의 모습을 잘 반영하였다. (줄거리 생략) 줄거리가 다소 이탈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작가는 변명을 하는데 자기가 설정한 목표에 도달하는 데 있어 지름길을 마다하고 우회로를 택하여 인간과 자연의 온갖 다양한 모습들을 조감하면서 사색하는 스펜서의 태도를 보여준다. 여기에는 도덕적 알레고리와 정치적 알레고리로 나누어 볼수있다. 1,2,3 편을 Spenser가 완성하고 궁정인으로 발탁되어 국정에 참여할수있게 되기를 기대했으나 버글리 경이 냉담했고 그는 정치적 이상을 펼쳐볼 기회가 무산되었다. 이에 실망과 궁정인들의 나태와 권모술수에 대한 환멸을 가슴에 안고 1,2,3의 기독교 휴머니스트로서 군주와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이상적인 세계에 대한 그의 갈망과 믿음은 변하지 않았으나 나머지 세권과 이른바 인생무상은 처음 세권에 비해 구성이 더욱 복잡하고 느슨해지면서 그 틈새 사이 사이 표면에 노출된 시인의 의도와는 다른 억압된 의미가 암암리에 드러나고 있다. 이는 틈새와 모순과 억압의 모습을 보여주며 전위와 분열현상을 나타낸다. 따라서 오늘날의 독자는 이 시는 시의 일관성과 시인의 의도까지도 문제 삼는 RMx이 여려있는 시의 대표적인 예가 되었다. 종결지을 수 없는 줄거리를 시작하는가하면 등장인물들은 끊임없이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보편적 가치의 고정된 세계를 반영하는 종결된 텍스트의 즐거움을 주기를 이시는 거부함으로써 고정된 등장인물과 고정된 djEJs 의미의 가능성도 끊임 없이 무산시켜버리는 반복된 좌절과 부재의 지속성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풍요롭고 다양한 르네상스 시대의 정신적, 물질적 요소들을 통합하고 있는 작품이란 점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사도 전통과 당시 영국인의 애국심과 기독교 휴머니즘의 통합, 기사도적인 사랑과 기독교적 결혼의 통합, 이탈리아 기사문학과 중세 비유담의 통합, 섬세한 관찰과 고도의 상상력 통합이 그 예이다.
불펌금지!!! ㅠㅠ
2009년 7월 7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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