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5일 일요일

글쓰기 시험 족보

일반적으로 스크린 쿼터 제도 축소 논란의 시작은 한국이 미국에게 자유무역협정을 체결을 요청하였고 미국이 이에 대해 체결하는 대신 자동차 수입세 폐지, 의약품 수입세 폐지, 쇠고기 수입 허용, 스크린 쿼터 축소를 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러자 한국정부는 스크린 쿼터 제도에 대해 종전의 146일에서 73일로 2006년 7월에 변경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우면서 이에 반발하는 영화인들과 정부 간의 대립에서 시작된 것이다. 얼마 전 ‘어린아이는 보호하되 어른이 되면 다 독립하는 것 아니냐!’라고 노무현 대통령이 스크린 쿼터 축소 관련 발언을 하면서 논쟁에서 투쟁으로 붉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스크린 쿼터 제도 논쟁을 통해 밝혀진 제도 내부적 문제들이 더욱 심각했다. 따라서 무조건 스크린쿼터 찬성, 반대 보다는 제도의 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을 잘 해결한다면 한국영화의 근원적인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희망을 안겨주게 될 것이다.
스크린 쿼터란 극장이 자국영화를 일정기준 일수이상 상영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이다. 이러한 제도는 기본적으로 외국영화의 잠식을 방지하고 국내영화를 보호하고 육성하며 시장 확보에 유리하게 하는 제도이다. 따라서 스크린 쿼터의 축소로 인해 국내 영화인들은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문제는 논쟁을 가져왔으며 점점 정치적 성격으로 변하면서 영화 대책위는 투쟁방향을 쿼터사수를 넘어 한국과 미국의 자유무역제도 반대로 확산시키기로 결정했다. 결국 스크린 쿼터제도는 ‘빙산의 일각’인 것이다. 물위로 드러난 것은 스크린 쿼터지만 물밑에는 스크린쿼터와 연결되어 ‘자유주의,신자유주의,보호주의,자유무역협정,한국과 미국의 관계, 국익, 문화정체성’같은 다양한 거대 의제들이 버티고 있다. 특히 이 부분에서 영화인들은 문화의 다양성에 주목한 것이다. 그래서 문화의 다양성을 위해서 스크린 쿼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해외에서는 아주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 평론가 아드리앙 공보는 ‘스크린 쿼터 축소가 프랑스의 언론에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가 쿼터제도가 산업을 보호하는 것인지 예술을 보호하는 것인지 분명하지가 않다’라고 말한다. 프랑스 언론이 처음에는 스크린 쿼터 사수하려는 한국의 행동을 매우 비중 있게 다루었다. 하지만 지금 프랑스 언론은 한국의 스크린 쿼터 제도에 대해 잘못된 정책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 이유는 한국의 스크린 쿼터가 단순한 한국과 미국과의 관계에서 벗어나 그 내부의 문제에 주목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한국영화를 처음에 높이 평가한 것은 일부 단순한 흥행위주의 영화가아니라 예술영화 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스크린쿼터 논쟁은 예술영화 보호를 외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서양인들이 주목했던 한국영화를 상기해야한다. 한국의 스크린 쿼터가 작가주의 영화보다 흥행과 상업장르영화를 보호한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 즉 흥행에 대한 권리가 아니라 실패와 재능 있는 시나리오에 대한 권리에 주목해야한다. 한국의 상황을 외국에 더 잘 알리기 위해서는 이미 스크린 쿼터의 수혜를 받은 주인공들 외에 이번 위기를 계기로 시스템 혜택을 받지 못한 이들에게 발언권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스크린 쿼터 축소 반대 이유로 문화적 다양성을 주장하듯이 국내의 스크린 쿼터 필요성도 제기되어야한다. 다양한 영화 제작과 상영을 제약하는 환경 특히 관객이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고 있는 국내 배급망에 대한 문제이다. 이미 몇몇 대형영화사의 독식은 영화계의 빈익빈 부익부와 함께 한국영화의 다양성 확보에 심각한 장애가 되고 있다. 또한 대다수 영화종사자들의 열약한 처우문제도 심각하다.
이 상과 같이 스크린 쿼터 논쟁을 통해 우리는 스크린 쿼터 내부의 제도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스크린 쿼터 제도를 일부 메이저 영화 같이 단순한 흥행위주의 영화를 보호하는 것보다 독립영화같은 작품위주의 영화를 의무상영하여 영화의 질을 높여야 할 것이다. 이미 미국의 헐리우드영화도 독립영화 또는 저예산영화의 경쟁력을 인정받아 최근에는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도미네이트해버리는 일이 자주 생긴다. 우리 한국도 단순한 흥행위주의 영화보다 다른 나라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좋은 영화를 육성하여야한다. 따라서 이러한 육성을 위해 스크린 쿼터 제도에 변화가 필요하다. 일명 ‘마이너 쿼터’로 우리나라의 작은 영화, 예술영화, 독립영화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불펌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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