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주의(1720-1785)]
{개념} : 계몽주의는 영국에서 발생하여 프랑스를 거쳐 독일로 들어왔다. 계몽이란 인간이 이성과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 상호간의 관계,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인간과 신과의 관계를 규정짓고, 무지와 몽매를 계발시켜 인간 생활의 진보와 개선을 도모하고자 하는 합리주의적 사고 경향을 말한다. 계몽주의는 무엇에 의에 의하면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느냐가 문제되었을 때, 계몽주의자들은 신 대신에 이성과 지식과 경험을 내세웠던 것이다. 그들은 신 대신에 이성을 새의 유일한 지침으로 삼았고, 이성을 토대로 모든 인간 생활의 제도를 규정짓고 세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인간들을 무지와 몽매에서 계발시킬 필요가 있었다. 계몽주의 운동의 결과로 정신적으로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전통과 권위에 항거하면서 생활의 목표를 영혼의 구제에 두지 않고 현세에 있어서의 개인의 행복에 주게 되었으며, 인류는 점차로 진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실용주의적 경향이 짙어졌다. 사회적으로는 인간이 본래 지닌 것으로서 외부적인 의지에 의해서 박탈당할 수 없는 자연권에 대한 생각과 그것에 따르는 자연권의 이념이 수립되고, 개인의 권리와 자유가 존중되는 민주주의 사상이 뿌리내리기 시작하였다. 이 사상은 훗날 프랑스 혁명의 기틀이 된다. 당시의 전데 군주들도 이 사상에 영향을 입어 전제적인 횡포를 일소하고 국가를 국민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수단으로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대자연관은 자연을 그저 신의 창조물이라고만 생각하지 않고 합리적인 법칙이 지배하는 것으로 간주, 이것을 법칙적으로 설명하려는 근대 자연 과학의 근본 관념이 확립되었다. 종교면에서는 성서의 합리적 해석이 행해졌고, 교회의 교의가 비판되었으며, 신앙의 자유가 제창되었다. 그리고 종교를 도덕의 체계로 보고, 신앙을 도외시하는 경향도 강하게 일어났다. 이와같은 사조가 독일에 파급되어 계몽주의 시대가 전개된다. 독일의 정신 운동의 대부분이 으레 그랬듯이, 계몽주의도 외국의 영향으로 개화된 것이지만, 그 이전에 계몽주의적 요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이전부터 계몽주의의 원형이 있었으며, 그것을 받아들일 만한 소지가 충분히 있었다. 즉 17세시부터 독일인들의 마음을 강하게 지배하고 있던 경건주의와 철학자 라이프니츠의 사상이 바로 그것이다. 경건주의는 슈페너와 프랑케에 의해 시작된 일종의 종교 운동이다. 이들은 개인의 인격과 개인의 신앙을 존중하였으며, 교회와 승려의 매개없이 직접 신과 접하겠다는 중세 신비주의 전총을 이어받아 개인의 내적 신앙 체험을 중히 여기고 교의적인 것보다 도덕적인 면을 중시하며, 언제나 엄숙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였다. 이들은 엄숙과 경건이 생활의 모토였기 때문에 심지어는 댄스까지 악이라고 생각했다. 이 사상은 얼핏보면 합리주의와는 상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통적인 교회를 떠나 개인의 신앙 체험과 자유를 존중하는 점에서 서로 공통점을 지닌다. 합리주의에서는 일체의 인식이 개인의 이성과 사유에서 생기나, 경건주의에서는 이것이 개인의 신앙 체험이 서로 다르다. 독일의 계몽주의가 계몽주의 육성의 지반이 되었다. 이러한 지반 위에 도입된 독일의 계몽주의는 자연히 종교 감정이라는 비합리적인 면을 버리지 않고, 도리어 그 요소를 살리려는 독자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프랑스에서는 계몽 사상이 정치적인 힘이 되어 대혁명을 준비하는 모채가 되었지만 독일에서는 경건주의 전통 때문에 정치적인 힘이 되지 못했다.
<고트세트> : 철학이론을 문학에 응용하여 계몽주의 문학을 일으킨 독일 계몽 문학의 창시자이다. 그는 대학의 교수로서 시학을 가르쳤다. 문학은 이성의 작업이기 때문에 감정과 공상을 배제해야 하고, 올바른 지식만을 필요로 한다고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문학의 오락적 요소는 무용한 것이 되며 문학은 오직 교훈을 주고 사람을 교화시키는 실리적인 역할만을 수행한다. 고트세트는 이러한 목적을 문학의 지상 목표로 생각했고 그것을 추구했다. 그는 또한 시인은 자연의 모방자이며, 자연은 합리적인 합목적성의 한 체계이기 때문에 시인이 쓴 모든 것은 이성적이어야 하고, 합목적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극에서는 시간과 장소와 줄거리를 일치시키는 삼일치 법칙의 엄수를 요구하였다. 그는 너무 이성에 편중되어 감정을 무시하였기 때문에 결국은 보드머 등 스위스파로부터 호된 비난을 받게 되었다.
{보드머와 스위스파} : 고트세트는 이성 만능에 반기를 들고 감정과 공상의 권리를 주장한 사람들이 스위스의 학자 보드머와 브라이팅거이다. 이들은 문학의 사명을 도덕적 교화라고 생각하며 감정과 공상의 권리를 주장하였다.
{로코코 문학} : 로코코 문학이란 문학적인 면에서 화려하고 섬세하고 관능적이고 향락적인 문학 풍조를 지칭한다. 당시의 시들은 술과 여자와 사랑을 노래하며, 현세 긍정적인 인생 희열과 관능의 즐거움을 찬미하였다. 하지만 현세를 긍정하는 태도는 어디까지나 계몽주의적 합리관에 입각하고 있다. 이들의 문학은 생활의 고백이 아니라 현실 생활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문학이었기 때문에, 오래 지속될 수는 없었다.
<클롭슈토크> : 크베트린부르크에서 경건주의자인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미 15세 때부터 시인이 되기를 결심하고 베르길과 밀턴 등을 읽고 배웠다. 후년에 완성한 장대한 서사시 (구세주 : 크리스트의 탄생으로부터 수난, 승천에 이르기까지 크리스트의 전 생애를 노래함으로써, 그의 경건주의적 종교 감정을 피력한 서사시이다. 현세를 긍정하는 계몽주의적 기반위에서 순수한 종교 감정만을 읊은 서정적 종교시이다. 생애를 바탕으로 한 시인 자신의 종교적인 감정 체험을 표현하려고 했기 때문에 서사시의 요소인 줄거리와 사건과 인물 서술과 환경묘사 등이 소홀하기 짝이 없다.) 의 구상도 이 무렵에 싹텄다고 한다.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신학을 배웠는데 그곳의 많은 문인들과 교섭을 가지면서 브레멘 기여파에 가담하였다. 클롭슈토크의 문학사적인 의의는 볼프, 고트세트적 이성 편중의 계몽주의 속에 경건주의적 요소를 불어 넣어 순수 감정의 문학을 전개시킨 점과 송가에 자유 운율을 사용하여 독일어에 새 활력을 고취시킨 점 등이라고 볼수 있다.
<레싱> : 고트세트에서 출발한 계몽주의 문학이 빌란트에 의해서 대표되는 우아, 경쾌한 로코코 문학과 클롭슈토크에 의한 종교적 감정 중심의 문학으로 발전 되어 갔을 때, 이성과 감정을 조화시켜 이론 과 실제 작품으로 독일적인 계몽주의를 완성시킨 사람이 레싱이다. 레싱은 신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독서를 좋아하였다. 12세 때 아브라 학교에 입학하여 급비생으로 고전 교육을 받았다. 17세 때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신학을 배워 지식욕이 왕성하고 생활력이 강해 신학에 만족하지 못하고 문헌학과 언어학을 공부하는 한편 문인들과 사귀면서 연극에 흥미를 느껴 극단과 관계를 맺었다. 그가 관계하던 극단이 파산하여 해산되자 그는 베를린으로 갔다. 다년간 그곳에 머물면서 창작, 비평, 번역 등 다방면에 걸쳐 문필활동을 하였다. 그때 그는 시대와 국가와는 관계없는 우수한 작품이면 무엇이든지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미스 사라 삼프손 : 영국 극 본받음.. 독일 최초의 본격적인 시민 비극. 단시에는 파격적인 산문을 쓴다.) 그 후 군사령관의 비서가 되어 호화롭게 지내면서(민나 폰 바른헬름 : 7년 전쟁 후의 독일 국정이 잘 묘사되어있다. 모사가 그대로 정치, 사회 비판이 되고있다. 노골적인 풍자를 배제하고 틀에 박힌 희극적 인물이 아닌 비극적 인물을 등장시켜 혼란 속에서도 진실하고 착한 사람들이 불행을 참으면서 살아나가는 모습들은 욕설없는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은 이 무렵에 쓴 작품이다. 40세에 볼펜뷔텔 도서관 관장으로 초빙되었다.(에밀리아 갈로티 : 당시 독일의 봉건적 지배 계급의 부패와 폭정을 통렬히 탄핵하는 동시에 비극적인 저항을 꾀하는 시민 기질을 찬양하고 있다. ‘이 칼로 네 가슴을 찌를 줄 알았나? 천만에! 난 너의 재판을 받겠다. 그리고 다음은 저 세상에서 우리 모두를 심판하는 신 앞에서 만나자!’=비극적인 저항의 최후의 부르짖음이며 차락의 상징인 영주를 도덕적으로 굴복시키는 말이다.) 46세에 친구의 미망인과 결혼하였으나 1년 후 난산으로 처를 잃었다. 만년의 그는 신학에 관심을 갖고 함부르크의 목사와 논쟁을 벌였다.(현자 나탄 : 크리스트교, 유태고, 회교의 대립이 관용과 이해와 애정에 의해 서로 융화된다는 이야기로서 종교에 있어서는 교리보다도 실천이 중요하며 모든 종파를 초월해야 되고 관용과 덕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설명한 것이다. 인간은 모든 종교적인 편견을 버리고 관용과 인류애를 갖고 살아야 한다는 것.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나 독일 고전극의 선구) 52세에 죽었다. 그의 평론은 당시의 독일 문학에 새로운 내용과 형식을 제시해 주었으며 전총적인 방법을 뒤엎을 정도로 영향력이 컸었다. 그는 유연한 언어와 사고의 엄밀성은 지금도 독자들에게 큰 감명을 준다.
폭풍 노도 [1770-1780]
{폭풍노도란} : 18세기 후반 계몽주의와 고전주의 사이의 짧은 기간 동안 젊은 문학가들에 의해서 폭발적으로 추진되었던 혁명적 운동을 말한다. 계몽주의의 이성 만능과 합리주의에 반기를 들고 감정 해방을 부르짖으면서 개성적이고 비합리적이고 자연적이며 정열적이고 외국 모방이 아닌 민족적인 것을 표방하였다. 그리고 독창적인 인간을 찬미하고 스스로 천재라고 자처하면서 자유로운 표현을 제약하는 종래의 규칙과 형식을 무시, 감정이 나아가는 대로 글을 썼다. 이 운동은 인간의 정신적 활력을 해방시켜 자유롭고 자주적인 창조 활동을 도왔던 만큼 정신사상으로나 문학사상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이 운동의 효모는 루소의 자연 복귀 사상과 셰익스피어의 숭배이다.
{루소의 영향} : 계몽주의자이지만 이성에만 사로잡혀 있던 당시의 사상가들과는 달리 감정의 우위와 심정의 권리를 주장하여 전유럽에 강렬한 영향을 미친 특이한 사상가이다. 그의 저서에서 자연은 인간을 원래 선량하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들었지만 사회라는 것이 인간을 사악하고 불행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이 잃어버린 인간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인간 존재의 근원인 자연으로 되돌아가서 자연물인 인간의 감정과 의욕의 존엄성을 자각해야 된다고 논했다. 독일은 200이 넘는 소군주국으로 분단되어있어서 시민 계급들이 공통적인 활동권을 가지기에는 그 힘이 너무나 분산되어 있었고 개개의 소구역 안에서도 그들은 정치에 참여할 기회가 없었다. 이외 같이 독일의 지식인들은 비현실, 비정치 속에서 자기를 내면적으로 승화 시키면서 만족을 구했다. 이것이 독일의 예술과 사색을 내면으로 향하게 한 연유이다.
{폭풍 노도 문학의 장르와 주제} : 폭풍 노도 문학의 중요 장르는 희곡과 시이다. 그들은 재래의 3통일 법칙을 무시하고 천재와 사회 인습과의 상극에서 빚어지는 알력과 절망, 격앙, 분노 등을 마구 터뜨린다.
<젊은 괴테> : 괴테는 폭풍 노도 운동의 중심 인물이었으나 이 운동에만 머물지 않고 그것을 극복, 성장하여 세계 문학사상의 천제로 군림하게 되었다. 괴테는 1749년 8월 28일 정오 마인 강변에 있는 프랑크푸르트시에서 출생했다. 그 당시의 프랑크푸르트는 교통의 중심지로서 독일 황제의 대관식이 거행되었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가장 번영된 제국 직속의 자유시였다. 아버지에게서는 성실한 기질을 어머니에게서는 예술적 재능을 물려 받은 괴테는 부유한 상층 가정의 외아들로서 많은 교양을 쌓으면서 행복하게 소년 시절을 보냈다. 16세 때 법률을 공부하기 위해 라이프치히로 갔다. 그는 법률보다 문학과 미술에 열중하였고 3년 연상인 케트헨과의 연애에서 그 감미로움과 괴로움을 만끽했다. 그는 이 이 소녀와의 연애에서 낳은 인생 문제와 생활의 고비를 비로소 체험한다. 그것은 결혼하는데 있어서 가장 문제가 되는 계급차이의 모순이었다. 이 무렵부터 서정시와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케트헨과 헤어지고나서 지나친 방종생활로 병을 얻었는데 병상에 있는 동안 스스로 종교 감정을 체득하게 된다. 21세에 법률을 공부하기위해 슈트라부르크에서 헤르더를 만나 그로부터 민요의 아름다움과 자연과 감정의 숭고함과 호머와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에 대해 많은 가르침을 받고 크게 감동했다. 또한 브리온을 알게 되어 사랑했지만 1년후 해어졌다. 그러나 그는 그녀를 버린 죄책감 때문에 일생을 총하여 참회의 한을 잊지 못하고 그 의식이 후일의 그의 작품에 여러 가지 형태로 투영된다. ‘괴츠‘ ‘파우스트‘등 순진한 처녀를 버려놓은 죄 값을 다룬 부분들은 이러한 참회의 결과이다. 그리고 보다 승화된 브리온의 모습은 파우스트 마지막 부분에서 애인 파우스트를 기다리는 그렌트헨에게 엿볼 수 있다. 그 후 괴테는 변호사 자격을 얻어 고향으로 돌아온 괴테는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개업하는데 이때 (괴츠 : ’지금부터는 허위의 시대가 온다‘ 라고 주인공이 마지막에 외치면서 죽는데 이 허위에 대한 분노가 바로 시대 정신의 표명이라고 할 수 있다. 형식은 3통일 법칙을 무시하고 짧은 장면들을 자주 전환시켜 자유롭게 극을 진행시키고 있다.)초고를 발표한다. 그리고 괴테가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법률 견습을 하기위해 베츨라르로 갔을때 거기서 친구의 약혼녀인 샤를로테를 알게 되어 열렬한 사랑에 빠졌다. 그는 이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3개월후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 체험을 두 세 개의 외부적 사건과 연관시켜 쓴 서간체 소설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권총 자살한 친구 예루살렘의 사건에서 힌트를 얻어 쓴 일기체 소설이다. 평범한 줄거리에도 불구하고 애수와 낭만에 절어 있는 비련적 요소가 독자의 심금을 울리 겠지만 풍부한 감정과 자유분방한 정신과 시대에 대한 반항이 이 작품을 불후의 명작으로 만들었다. 이 소설이 풍기는 자연 감정이 잘 나타나 있는데 ’꽃 향기의 대하를 헤엄치는 황금충‘ 처럼 자유로이 생동하는 자연의 힘과 그 아름다운 표현을 잘 나타낸다. 자연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인생에서 허식을 배제하고 내부에서 솟아오르는 힘을 중히 여기고 인간 본연의 자기를 살려 보자는 정신이다. 베르테르는의 주위 환경은 체면과 낡아빠진 관습과 사소한 이기심 때문에 그의 능동적인 의욕을 신장시켜주지 못한다. 즉 베르테르는 사랑에 실패하였다기보다 주위의 벽에 부딪혀 그 희생으로서 몰락한 것이다. 이런 뜻에서 시대의 저속과 그 협소에 대해 싸우는 잠재력의 봉기라고 볼수있다. 이것은 훗날 지성인으로서 사회적인 온갖 구속을 타파해 보려는 강렬한 의욕만은 매한가지아디.)이다. 괴테는 프랑크푸르트의 은행가 딸인 쇠네만과 한때 약혼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브리온 처럼 얽매이기 싫은 특수적 성격 때문에 해어졌다. 이 연애로 괴테의 시정을 복돋우어 좋은 시를 남겼다. 그 후 괴테는 바이마르 궁정의 초대를 받고 그곳으로 떠났다. 이는 사실상 폭풍 노도 운동과는 결별을 하는 셈이 된다. 괴테의 작품은 한 수의 시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자기 체험의 고백이며 참회이며 추억이요 자기비판이다. 그는 자기 생활의 고뇌를 예술화함으로써 그것을 극복하고 보다 높은 세계로 도약할수 있었다. 그래서 괴테에게는 예술이 자신의 운명이었으며 자기 존재에 대한 필연적인 조건이었다.
<젊은 실러> : 실러는 괴테와 더불어 독일 문학의 황금 시대를 구축한 위대한 극작가이다. 괴테보다 10년 늦게 출생하였다. 7세때 라틴어 학교에 입학했는데 이 무렵에 그는 궁정의 향연과 오페라등을 구경하고 연극에 대한 관심이 싹텄다. 14세때 오이겐공의 명령을 받아 강제로 군인 양성소에 입학 하게 되었다. 이때 실러는 군주가 마음대로 국민들의 생활을 지배하는 횡포를 처음으로 느꼈다. 그는 7년간이라는 귀중한 청춘 시대를 절대 복종만을 강요하는 이학교에서 보냈다. 이 쓰라린 체험이 그에게 불굴의 반항 정신을 고취시켰으며 자유의 존귀함을 깨닫게 하였다. 학교를 졸업한 그는 견습 군의관으로 임명되었고 그다음 해에 (군도 : 카를은 마지막 막에서 ‘아! 나는 얼마나 어리석은 자였던가.’,‘나는 그러기 위해서 죽지 않으면 안 된다.’ 라고 한것 처럼 폭력에 대해 무거운 책임을 느끼며 세계의 도의적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자수로 속죄하려고 결심하는 것이다.)를 완성했다. 실러는 재*를 무단으로 구경 했는데 그것이 발각되어 오이겐공의 분노를 낳아 금고형을 선고받고 문예 직품 집필을 금지당했다. 실러는 (피에스코의 반란 : 독재 정치를 타파하고 공화 정치를 희구하는 정치적인 자유를 표현.)을 갖고 고국을 탈출하여 만하임으로 갔다. 그는 체포령을 피해 가며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받으면서 유랑생활을 하다가 학창시절의 친구 어머니의 호의로 그녀의 별장에서 기거하게 되었다. 여기서 실러는 (간계와 사랑 : 당시 독일 현상, 즉 소영주들의 전제에 대한 신랄한 탄핵이라는 점에서 현실적인 의의를 지니며 이것이 동시에 폭풍 노도 정신의 발로라 할 수 있다. 독일 시민의 입장과 심리를 직접 잘 묘사했다.)을 썼다. 1785년 친구 쾨르너의 호의로 그의 집에서 기거하면서부터 평온한 생활을 보내며 창작에 전념할 수 있었다.
고전주의
{개념} : 일반적으로 고전주의라 함은 희랍, 로마의 고전적 문화의 부흥을 꾀하며 그것을 모방하려는 예술 사조를 말한다. 문학상에서의 고전주의는 17세기 프랑스에서 개화하여 발전되다가 18세기에 와서는 영국,독일에서도 한 시기를 풍미한다. 독일에서는 1786년 괴테가 이탈리아로 여행한해로부터 실러가 죽을 때까지의 20년간을 고전주의 시대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전주의 문학에서 일반적인 특징은 첫째로 독창성보다도 고대예술의 모방에 치중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방은 고대 예술의 실질을 섭취하여 그것을 자기의 피로 만들고 살로 만든다. 둘째로는 고전주의 문학은 이성적이고 지적이고 합리적이다. 셋째로는 인간의 정신적인 면을 중시하고 도덕적인 목적을 노리며 자기완성을 목표로 하는 인간 교육적인 요소가 농후하다. 넷째로는 고전주의 문학은 건전한 문학으로서 사회와 기성 질서 속에서 각자가 점해야 하는 위치를 가르치고 있다. 다섯 번째로는 관념적인 색채가 농후하다. 그시대의 정치적 정세와 작가들의 태도를 들지 않을 수없다. 프랑스 혁명으로 독일도 그 와중에 휘말리게 되는데 시민 계급의 후진성이라는 사회적 상황으로 인하여 인간의 이상이 직접적으로 현실 사회에 실현되지 못하는 역사적 상황도 있고 해서 그들은 정신적 문화 즉 인간의 도덕적 형성과 세계인적 휴머니즘의 이념을 추구하는 편이 일시적인 국가적, 정치적 사건보다도 더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 했기 때문이다. 그해서 그들은 정신으로 인간 존재를 정립하고 예술로 현실 사회를 정화시키려고 한 것이다.
<괴테> : 괴테는 바이마르에서 고문관이 되어 귀옥으로 봉해 졌다. 슈타인 부인과의 교제를 통해 그녀의 풍부한 감수성과 깊은 이해력과 우아한 절도와 따뜻한 포용력이 괴테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그 후 이탈리아로 아무도 모르게 여행을 간 그는 이탈리아에서 자유로운 생활, 아름다운 예술품들이 괴테에게 영향을 끼쳐서 (에그몬트 : 폭풍 노도에서 고전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작품이다.) (이피게니에 : 인간 내부에 있는 인간성 자체를 가지고 갈등을 해결하려고 했다. 인간이 범하는 죄와 과실을 운명의 장난으로 보지 않고 인간 자신의 책임으로 생각. 이러한 인간적인 죄와 과실을 보다 높은 인간성에 의해서 구하는것을 표현. 여러 가지 외적 압력을 배제하고 모든 것을 내면적, 윤리적 인격에 집중시켜 인간의 곡귀한 마음이 모든 갈등을 해결하게 하고 궁극적인 구제를 갖고 오게 했다.)를 완성 시킨다.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괴테는 크리스티아네와의 연애를 했으며 그녀와 동거하다가 결혼까지 했다. 그가 대학에서 처음 실러를 만나게 되고 서로간의 교우를 통해 의견일치를 봤고 이때부터 독일 고전주의의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실러와의 협력으로 괴테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 : 실러의 권유로 착수한 교양소설 로 주인공이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댕안에서 갖가지 체험을 쌓으면서 성장, 발전하여 인간으로서의 자기 형성을 이루어 가는 과정을 그리는 소설이다. 주인공 빌헬름은 넓은 사회 활동 속에서 비로소 생의 의의를 찾는다. 이처럼 생의 진정한 의의를 찾을 때까지 일개의 개인이 수많은 미로를 통과하다가 참된 인간으로 성장, 발전되어가는 도정을 그리는 것이 이 소설의 이념이다. 개인의 운명을 그리고 성격과 시대 정신에 제약되는 인간의 성장 과정을 온갖 측면에서 제시함으로써 진정한 근대 소설을 확립한 데 있다.)를 완성 하게 된다. 그는 유일한 협력자였던 실러를 잃고 어머니를 여윈 괴테는 힘든시기를 맞는다. 그가 60일때 열렬한 연애를 체험한다. 그러나 그 상대가 너무 나이 어린 여성이었기 때문에 거의 모두가 일방적인 연정으로 끝난다. 이러한 절망적인 연정은 (친화력 :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대 강하게 작용하는 견인력은 화학상의 친화력처럼 항상 기존의 질서와 인륜 관계를 파괴하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 인간이 자연적 생물인 이상, 자연의 강제에 예속되지 않을수 없는 것이지만 그러나 내부 안에있는 도덕률의 힘으로 이 애욕을 체념해야 되는 법인다. 이러한 능력이 없는 자는 파멸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라고 괴테는 말한다.)을 완성했다. 그의 아내를 잃은 괴테는 여러 친했던 사람들과 사별하기 시작하였고 아들 마저 잃게 된다. 고독하게 된 그는 집에 틀어 박혀(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 주인공이 인생을 방황하면서 개인의 교양을 쌓아 왔으나 이제는 실제 활동하면서 공동사회에 유용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개인적인 관점이 사회적인 것으로 확대되어 보다 폭 넓은 인간성을 완성하는 것이 궁극의 목적이 된다. 드러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견문을 넓히고, 체념의 지혜를 터득해야한다. 체념이란 단순한 체념이 아니고 인간이 욕망에만 사로잡힐 것이 아니라 자기 능력의 한 계를 알고 하나의 일에만 전념하는 것을 말한다. 제 3단계는 민주적 공동 사회로 발전하였으니 거기에는 직무의 차는 있을지언정 계급의 차는 없다. 각자의 소유는 각자의 노력과 비례하는 곳이다.)를 완성하고 (파우스트 : 괴테는 60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이 책을 썼기 때문에 그의 인생 체험이 모두 이 한 편에 총망라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파우스트는 희곡의 단순한 등장인물이 아니고 인간 존재를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이다. 그러니 이 극의 주제는 한 인간의 생활 내지 생애가 아니고 인간 존재라는 것이 무엇이며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을 다루는 데에 있다. ‘인간이 어두운 충동을 받더라도 올바른 길을 잃지 않는’ 선한 본능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1부는 파우스트는 인생의 의미와 가치가 무엇인가를 규명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학자이다. 이 생기없는 지식이 그의 정열적인 인식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한다. ‘어느 순간을 향해 멈추어라! 너는 정말 아름답도다’하고 외치면 혼을 준다는 계약. 인간과 우주의 궁극적인 진리를 발견하자는데에 있다. 파우스트는 첫째는 학문 탐구의 시기요 둘째는 생의 향락의 시기요 셋째는 행위와 사업에서 인생의 의의를 찾는 시기이다. 파우스트가 학구 생활의 허무함에 절망하여 생의 향락을 거쳐 신국토 건설이라는 아름다운 행위의 순간을 맛볼 때까지 혼미되고 잘못되기도 했지만 언제나 노력하는 사이에 점점 순화 성장해 갔던 것이다.)를 완성한다.
<괴테 와 쉴러> : 괴테의 생애는 조용히 끊임없이 성장한 거목처럼 그 자질이 조화를 이루면서 다방면으로 뻗쳐 나갔지만 실러의 경우는 외골수에만 빠지는 의지의 생애였다. 괴테는 자기의 감정이 흐르는 대로 자기를 서사시적으로 전개시켰으나 실러는 극적으로 자기 자신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고 이상과 현실의 상극이 그로 하여금 비극 작가로 성장시켰던 것이다. 그는 비록 약한 사람이었으나 의지의 힘으로 진, 선, 미에 도달하려고 노력하였던 이념의 예술가였다.
낭만주의
{발생배경과 특징} : 고전주의의 반동으로 일어난 문학 사조이다. 독일에서 시작하여 전세계로 파급되었다. 독일적인 측징을 가장 많이 구비하고 있으며 동시에 근대예술의 특색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 낭만적이라는 뜻은 ‘진기한’,‘가공적인’,‘공상적인’,‘경이적인’이라는 뜻을 가진다. 이것이 ‘감정과 상상력에 호소하는’ 이라는 뜻이 더 첨가되어 지금의 용어로 정착이 된 것이다. 그러니 명칭만 보아도 낭만주의 문학이 공상적이고 황당무괴하고 꿈과 같은 내용을 갖고 있는가를 쉽게 알 수 있다. 계몽주의와 고전주의에 대한 저항운동인 이유는 인간의 정신구조에서 비롯되는 본원적인 거부이다. 낭만주의의 특징은 첫째로 이성대신에 감정의 권리를 주장하고 합리적인 것보다도 비합리적인 것에 매력을 갖는다. 둘째는 자유로운 유동을 좋아하며 동적이고 음악적이다. 셋째는 유한한 현실에서 신비적인 무한성을 추구한다. 낭만주의자들은 상상의 세계를 완전한 세계로 본다. 넷째로는 낭만주의자들은 개인주의자들이다. 자기의 개성을 주장하며 개인의 감정과 기분을 고집한다. 다섯째는 낭만주의자들은 현실과 환경에 불만을 품고 먼 세계를 동경하고 먼 과거를 추억하는 경향이 있다. 여섯째는 새로운 테마를 찾고 새로운 소재를 창조하려고한다. 일곱 번째는 자연에 대한 의식이 발달하여 아름다운 풍경, 장대한 풍경을 즐겨 묘사하고 인간과 사물의 세부 묘사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여덟 번째는 도달 불가능한 이상을 추구한다. 아홉 번째는 동경과 이상이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불만을 품게 되고 따라서 자기가 만들어 낸 환상을 스스로 파괴하며 자기 작품에 도전을 하고 자기작품을 희롱하고 조소한다. 이런것을 ‘낭만적 이로니‘ 라한다.
{전기 낭만파} : 슐레겔 형제, 노발리스, 티크 증이 예나에 보여 고전주의를 반대하는 문학 운동을 전개하였다.
<노발리스> : 그는 강한 종교심, 무한의 동경, 명상적 신비성, 중세 찬미, 시와 동화의 존중 등을 미루어볼때 낭만 문학의 특징을 고루 다 갖춘 시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가난한 귀족의 아들로 출생하여 엄격한 종교적 가풍 속에서 성장하였다. 18세때 실어와 친하게 지네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23세때 13세의 소피를 알게 되어 사랑하였는데 이것은 노발리스의 전생애의 운명을 결정지은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는 1년후 그녀와 결혼을 하였으나 2년 후에 그녀가 죽어버렸다. 그는 소피를 따라 몇 번이나 죽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부자연스러운 죽음을 원하지 않아서 그녀를 그리다가 저절로 죽어 피안의 세계에서 그녀와 재회할 것을 바랬고 그렇게 될것을 굳게 믿었다. 그는 율리에라는 광산장의 딸을 알게 되었는데 노발리스는 그에게서 소피의 모습을 보아 결혼을 하였다. 그는 슐레겔 형제와 티크 등과 사귀면서 ‘아테네움’이라는 동인에 들었다. 거기서 소피와의 연애 체험에서 생긴 산문시(밤의 참가 : 경건한 크리스트교적 신앙과 소피와의 연애 체험에서 이루어진 것으로서 어둡고, 신비적이고 마적인 낭만 정신이 잘 나타나 있다.)를 발표하였다. 29세의 일기로 사망..
사실주의
{본질과 그 배경} : 사실주의는 낭만주의의 공상적 비현실적 경향을 반대하고 현실에 눈을 돌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는 양식을 말한다. 사실주의 문학은 낭만주의의 주관을 대신해서 객관을 중희 여기고 상상과 동경 대신에 현실을 다루는 문학인 만큼 그 묘사는 정확하고 정밀하다. 주관과 상상력에 의해 재상을 자의로 변형시키지도 않고 과장하지도 않고 미화하지도 않고 세밀히 서술하며 작가의 의견과 감정을 노출시키지도 않는다. 사실주의의 발생기반과 배경으로는 첫째는 기술 시대의 도래와 경제 발전이다. 증기선 발달로 인해 생활권이 확대된다. 이로 인해 기계공업이 발달하게되고 부를 획득하기 위한 수단이 대규모화 된다. 따라서 대도시가 형성되고 자본가가 발생하고 프롤레타리아도 출현한다. 또한 산업의 발달로 인해 인구도 증가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더나은 삶을 위해 도시를 건설하거나 몰리게 된다. 이러한 현실속에서 사람들은 꿈만 먹고 살 수 없으며 정신 세계와 몽상의 세계에 빠져만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현실에 눈을 돌려 현실에 적응되는 생활 태도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주의가 불가피하게 되고 예술상에서는 현실주의적인 사실주의의 대두가 필연적이 되는 것이다. 둘째는 물질주의의 대두를 들수있다. 과학 기술의 눈부신 발달은 공업화의 촉진에만 머물지 않는다.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눈을 물질 세계로 돌리게 하고 실증적인 과학 정신과 유물론의 신봉을 부채질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형이상학적 사변과 비합리적 공상에서 벗어나 현실 세계를 개관적 분석적 합리적 실증적으로 보게된다. 셋째는 문화의 보급과 집단화를 들 수 있다. 시민 계급이 사회의 중추역을 맡고 문화의 담당자가 된다. 교양이 중산 계급에 널리 보급됨에 따라 문화는 소수자인 상층 계급에서 벗어나 일반화되고 대중화되며 개성적인 특성을 상실하고 평균화 내지 집단화된다. 신문의 발달이 이러한 경향을 더욱 부채질하여 인간의 사고 방식, 생활 방식, 감수 방식을 획일화시킨다. 사실 문학은 전대와는 달리 문체가 평범하고 소박하며 신비로운 면이 없어지고 보고조가 되며 내용도 외적인 면, 사회적인 면으로 돌려져 주관이 개입되지 않는 현실의 면을 그대로 재현시킨다.
표현주의
{개념} : 제 1차 세계대전을 전휴한 위기적인 시기에 주로 청년 문학도들에 의해 추진되었던 혁신적, 폭발적, 전투적 문학 운동이다. 이 운동은 모든 기성 질서에 대해 선전포고하여 진부하고 낡은 것을 허물어 버리고 새롭고 신선한 것을 찾으려 했으며 외계만을 대상으로 삼는 전시대의 자연주의와 인상주의를 거부하고 인간 내면에서 분출하는 감정의 표출을 지상 목표로 삼았다. 자연주의나 인상주의와 같은 외계묘사를 거부하고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는 내면 충동을 강렬하게 표출하는 것이 표현주의의 기본 입장이다. 표현주의자들은 일체의 예술을 정신의 직접적인 표출이라고 생각한다. 외계에서 받은 인상을 순간적으로 포착하는 인상주의와는 달리 내면에서 우러나는 감정의 움직임을 마구 표출해내는 것이다. 표현 형식도 서술적 문체가 아니고 단편적인 구, 단어의 나열, 신조어, 독백 등이 범람하여 추상성을 띄우게 된다. 표현주의 문학의 내용과 테마는 대체로 기성 가치체계의 파괴와 새로운 것의 추구, 창출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당시의 젊은이들은 전전, 전후의 위기와 혼란을 현실 생활의 허위와 정신 상실을 직접 목격하게 되었는데 그들은 이와 같은 혼란과 위기를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까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그 극복을 위해서 그들은 현실 세계를 부리째 개조하여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저그 정치적 방책만으로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새로운 정신운동을 전개하여 인간 자체를 근본적으로 개조해야 된다고 생각하였다. 내면의 힘으로 순수한 정신적인 세계를 만들어 정신적인 생을 누리는 사람들인 것이다. 표현주의자들은 내면의 힘 즉 정신력으로 세계를 개혁하려 하였으나 운동의 강령도 없고 통일된 이론도 없이 막연히 정신 정신하면서 실현성 없는 허황한 슬로건만 외쳤을 뿐이다. 따라서 그들의 욕구는 벽에 부딪치고 실현 가능성이 없음을 깨달았을 때 일부는 허무주의적 요소들을 지니게 되었고 또다른 일부는 시회주의와 평화주의를 옹립하였다. 표현주의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서정시 분야에서 순수하게 잘 나타나있다. 초기에 사회적인 불만과 혁명적인 절규, 유토피아적인 세계에 대한 동경과 허무적이며 절망적인 울부짖음, 전통의 파괴와 새로운 것의 창출 등등이 시에서 절박하게 표현되고 있다. 표현주의 희곡은 인간을 진실로 인간다운 기본 존재로 복귀시키기 위해 인간 개조를 목표로 하는 이념극이 많다. 자연주의 극처럼 유전과 환경이라는 조건 때문에 인간이 좌절하고 괴로워하는 과정을 그린다거나 혹은 성격과 심리의 갈등을 그리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피조물이 숨막히는 현실 속에서 괴로워하다가 갑자기 내적 충격을 받아현실의벽을 깨뜨리고 정신적인 자유에 도달하는 과정 같은 것이 그려진다.
<토마스 만> : 20세기의 위대한 소설가이며 문명 비평가이다. 그는 건전한 생의 세계를 동경하는 시민적 기질과 미와 정신 세계를 희구하는 예술가적 기질과의 대립, 갈등을 문학적 과제로 삼고 근 반생 동안 그것을 추구하였을 뿐만 아니라 시민 문화 전채의 운명을 보여 주었다. 비정치적 인간으로 자처하던 그가 정치적 국면에 부딪치다 시대와 대결하는 자세를 보이면서 많은 논문과 강연을 통해 시대의 정치와 문명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그는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하 아버지에게서는 시민적 기질을 어머니에게서는 예술가적 기질을 이어받았다. 16세때 아버지가 죽자 백년동안 이어왔던 만상회가 파산하고 어머니와 같이 뮈헨으로 이주하였다. 그는 보험회사의 사원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소설을 썼다. 나중에 이탈리아 살면서 이것을 단편으로 모아 (작은 프리데만 씨 : 병자, 불구자, 혹은 정신적인 결함이 있는 인물들이 시민적인 행복을 혹은 정신적인 세계의 즐거움을 추구하면서 파멸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 많다. 이것은 생의 세계와 즐거움을 추구하면서 파멸되어가는 과정을 그런 것이 많다. 이것은 생의 세계와 정신의 세계를 모두 동경하였으나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어딘가 한족으로만 기울어지려는 자신의 고뇌를 나타낸 것)라는 표제로 츨판하였다. 그는 다시 뮌헨으로 돌아와 잠시동안 주간잡지사에서 편집을 담당하였고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 : 건전한 시민이었던 초대에서 대를 더해 감에 따라 정신적으로 예술적으로는 세련되어 갔지만 퇴폐와 붕괴로 줄달음쳐 일가는 드디어 망해버린다. 이것은 시민과 예술가의 대립을 나타내는 것인데 정신적,예술적 기질의 태동은 시민적인 것의 붕괴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듯한다.)을 완성했다. 그 후 대학교수의 딸과 결혼하여 명성도 있고 해서 자유 문필가로 생활했다. 이 무렵에 (토니오 크뢰거 : ‘나는 두 새의 세계의 틈바구니에 끼어 어디에도 안주를 못하고 있다 그러나 평범한 시민을 사랑한다. 그 사랑이 하나의 창작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건전하고 행복한 시민적인 생활이 세계를 동경하면서도 그 속에 뛰어들 수 없는 예술가의 숙명적인 고독과 고뇌를 그린 것이다. 시민은 생활을 직접 살지만 예술가는 그렇지 못하고 그것을 창조의 대상으로 삼아 그것을 이해하고 관찰하고 표현뿐이다. 예술가는 생활을 사는것이 아니라 생활 밖에 서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베니스에서의 죽음 : 시민과 예술가의 대립을 극복하고 내적 조화를 얻었다 해도 언제나 위험성은 있는 것이며 미의 매력에 홀리게 되면 파멸을 면치 못한다고 묘사.)이 발표되었다. 그의 부인이 폐병으로 요양할 때 그가 체험한것을 토대로 (마의 산 : 중심 모티프는 생과 사의 문제. 즉 평범한 한 청년이 죽음에 애착을 느꼈다가 다시 생으로 옮겨오는 정신의 변용을 그린 것이다. 죽음의 애착에서 조화있는 생으로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소설. 주인공 카스토르프는 인간은 형식, 논리, 건강, 시간 등으로 대표되는 생에만 몰두해서도 안되고 자유, 위험, 병원 등으로 대표되는 죽음에 빠져서도 안되며 생의 배후에는 깊은 심연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생에 봉사해야 된다는 진리를 깨닫는다.)을 완성했다.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창작을 중단하고 정치평론을 발표하여 자기의 정치적 자세를 밝힘과 동시에 시민적 자유를 옹호하였다. 그는 노벨문학상을 받고 나치스의 위험성을 경고하였고 독일 시민권을 박탈당하였다. 그는 미국으로 이주하여 (파우스트 박사 : 퇴폐적이고 병적인 현대를 적나라하게 파헤침과 동시에 그 속에 있는 예술가, 지식인들의 구학 길 없는 정상을 구상화함으로써 현대의 예술, 문화, 정신 일반을 비판한다. 예술가가 신의 소리가 아닌 악마의 소리를 듣는다는 그 자체가 벌써 허물어져 가는 독일인들의 한 전형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양차 대전으로 야기된 독일의 비극이 얼키고 설켜 주인공의 비극적 미로와 독일의 파멸까지 합쳐저 비극성을 한층 더해간다.) 등을 발표하였고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카프카> : 초현실적, 환상적 소재를 구사하여 몇 중으로 소외된 현대인들의 절망, 좌절, 불안, 공포를 냉철히 정관하면서 그것을 리얼하고 실감나게 묘사한 20세기 최대의 소설가이다. 그는 유태인으로 어렸을적에 평생동안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큰 열등감을 가졌었다. (변신 : 자기소외가 일반화 되어 있는 현대세계의 부조리를 파헤치고 있다. 1969년 작품으로 이 사회, 가정, 인간관계에서 ‘나’란 무엇이냐?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관계’속에서 산다 이 ‘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하고 부질 없는 것이냐? 실제 역할의 본질은 아무런 역할을 못한다.)(성 : 인간 존재 그 자체를 시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희망과 절망 진실과 허위 죄와 무죄 자유와 속박 생과사, 지와무지, 현세와 내세같은 대립 가운데 있는 인간 존대 그 자체를 상징했다는 것이다.)
불펌하지 마세요~~ 시험공부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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