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elude
Wordsworth의 범신론적 자연주의는 다양한 자연의 모습들 중에서 특히 아름다운 양상들을 강조하며 본질적으로 자연은 인간의 심성에 긍정적인 작용을 하기 마련이라고 본다. 그는 다양한 자연물들 앞에서 인간이 수용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입장에 서 있었으나 그렇다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인간의 의식이 수동적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자연에는 신성이 깃들여 있지만 자연에 영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영혼을 지닌 인간이기에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상호보완적 관계이다. 자연은 인간에게 감흥을 유발하는 한편 혼과 에너지를 투사하며 자연의 에너지로 충만해진 인간은 자연의 영성을 감지하며 전율한다. 인간과 자연의 교감 순간을 노래한다.
Tintern Abbey
이 시는 Worthwords가 쓰고자 했던 자서전적 철학적 서사시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상상력의 본질 그리고 상상력과 자연의 관계라는 포괄적 주제와 함께 시인이 경험하는 상상력의 우여곡절이 작은 역사 마냥 빼곡히 담겨있다. 그리고 그가 자연을 앞에 두고 노래하는 것은 인간과 자연 사이에 존재하는 상보성의 원리인데 그 같은 관계가 인식되는 과정이 담담하게 서술된다. 단지 자연 그자체가 그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존재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자연과대면할 때마다 온갖 자연물들은 기쁨과 아름다움 그리고 충만감을 시인에게 선사한다. 하지만 교감의 순간에 대해 예찬하면서도 불안과 의혹이 존재한다. 기억이 잊혀져 가면서 미래의 불확실성과 거기에서 비롯된 시인의 불안감을 보여주는 것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은 애써 낙관적으로 생각을 펼쳐본다. 고통스런 환희와 현기증 나는 그 모든 황홀을 맛보던 시기는 사라졌으나 성인이 된 시인에게는 상실에 대한 보상이 뒤따랐다. 성인이 된 시인에게 장연에서 고요하고 슬픈 음악은 자연을 인간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자연의 인간화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시인은 자연의 광휘를 믿는 동안에는 자아와 자연의 원초적 통합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소년시절의 기억은 모두 다 사라져버렸지만 그가 여전히 자연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자연이 투사하는 새로운 자극들을 축적된 기억에 비추어 재해석하는 창조적 사색능력을 갖추게 되었기 때문이다. 맹목적으로 몰입하는 소년시절과는 달리 선택적으로 성년은 받아들인다. Wordsworth의 시적 창조력이 지탱되는 것은 자연에 대한 신뢰와 기억의 축적이다. 그러나 시적 창조력의 쇠퇴를 예감하면서 불안한 심경을 내비치고 있다.
Venus and Adonis
Coleridge는 시를 기계적인 시와 유기적인 시 두부류로 나누어 그것들을 각각 공상과 상상력이란 정신작용에 연계시킨다. 이는 공상력과 상상력의 차이를 드러낸다. Venus and Adonis의 초반 구절은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이미지들을 한두 가지 유사함만으로 연결시키는 능력에 따라 지어진 것이다. 공통점이 없는 이미지들은 접속병치되는 현상에 어색하게 느껴지거나 전체적으로 이미지 하나하나의 개별성을 유지한체 유기적 통합으로 발전하지 못한다. 그러나 다음 구절에서 상상력을 통해 서로다른 요소들이 외면상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 융합되는 유기적인 결합 방식을 보여준다. 따라서 공상이 작용하는 경우와 상상력이 작용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시를 창작할 때 시인은 영혼 전체를 투입해야한다는 말은 시작과정에서 요구되는 고도의 집중과 강렬성을 뜻한다고 해야한다.
The Rime of the Ancient
Coleridge의 마음과 의지가 매우 불안정한 상태로 접어들기 시작한 때 쓰여진 시다. Mariner는 이 시를 쓸 당시 Coleridge 가 자주 빠져들곤 했던 고립감과 소외감과 죄의식 등을 표상하는 인물이다. Mariner와 그의 동료들이 처한 상황은 인간이 추락 가능한 가장 깊은 나락에 처한다. 이러한 나락에서 서서히 상승운동을 한다. 생중사의 상태에서 소생하려면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사물들을 끌어안고 그것들을 서로 연결지어 한생명 온 생명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때 전제가 되는 것이 바로 상상력이라는 창조적 인식력이 비롯된다. 이 시의 서술된 묘사원리를 잘 발전 시킨 작품이다. 자연현상을 윤리적 세계와 연결짓는 인간화의 방식은 어디까지나 흐릿한 유추에 의해 야 한다. 상징에 가까운 비유를 뜻하는 흐릿한 유추에 반하여 형식적 자유는 공상의 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기계적인 비유를 말한다. Mariner의 창조적 인식력이 발동하는 순간 그때까지 끈적끈적하고 역겨운 물체로만 보이던 자연현상이 이제는 아름답고 환희에 찬 생명으로 이식되고 그결과 한생명으로 연결된 신비의 영역에 머무르게 된다. 성찬적 순간에도 Mariver의 의식은 수동적이다. Colleridge는 이 시를 통해 비판하는 것은 너무나 외부세계에 집착한 나머지 창조적 인식의 가능성을 무산시키는 기계론적 인식론의 오류에 대해서이며 Mariner가 빠져든 정신적, 정서적 불모 상태는 바로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다양한 이미지와 초자연적 사물과 사건들이 이 시에 나무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이 처럼 초자연적인 존재와 사물들로 얼키설키 뒤엉킨 이 시는 어쩌다 꿈속에서나 보게되는 신비의 세계로 우리를 유인한다. 그러므로 이 시의 근본 의도는 우주의 신비를 감지하는 능력을 점차 상실하고 있던 초기 산업화사회의 독자들을 신비의 세계로 안내하여 마음의 균형을 회복시키고 인간과 우주는 한 생명 온 생명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려는 데 있다고 하겠다.
Don Juan
바이런적 영웅의 모험과 편력을 그린 초기시들은 작가의 경험 미숙과 진실성 결여 그리고 허황된 포즈 등 많은 결함이 있다는 것이 오늘날 학자들 사이에 공통된 견해인 듯하다. 바이런이 그런 결함을 극복하고 자기 기질과 심성이 부합하는 문체를 개발하여 당대 현실을 복합적으로 보여주게 되는 것은 그가 영국을 등지고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로 건너간 이후의 일이다. 그가 그때까지 사용해 오던 스펜서적 연 모형을 과감히 파기하고 8행시형이라 불르는 이탈리아 풍의 희극적 연모형을 매개로 시작한다. 이 시의 진정한 주인공은 주안이 아닌 Byron 이다 . 시인 자신이 화자의 가면을 쓰고 이야기 중간에 지속적으로 끼어들어 사건의 진행을 가로막고 그 사건에 논평을 가하기 때문이다. 끼어들기를 통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Don Juan의 시풍은 풍자적 성격보다는 희극적 또는 익살 희극적 성격이 강하다. 시인으로서 그의 인생역정은 자신의 성격과 기질에 부합되는 스타일을 발견하고 그것을 완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Don Juan에서 바이런이 줄기차게 폭로하며 즐기는 것은 모순에 찬 인간의 모습이다. Byron의 주된 공격 대상은 그가 위선이라 이름 붙인 언행들로 정욕과 탐욕, 출세지향, 유명해지고 싶은 욕구와 같은 세속적인 욕망들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고 나는 언젲나 고결하고 순수하다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되는 인간 공통의 약점을 그는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Byron의 목표는 인간의 숭고한 감정이나 고귀한 열망을 적절한 맥락 속에 배치하여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그 가치들을 온당하게 평가하려는 데 있다. Byron은 재기 ㅇ넘치는 언어와 반어적 표현을 통해 그 주제들이 안고 있는 취약성과 자기모순을 폭로한다. 주안의 생각과 감정의 추이는 진지하고 고상하게 전개되다가 마지막 2행 단위에 오면 점강법으로 처리되어 완전히 역전된다.
The Fall of Hyperion
Keats는 현실을 등지고 아름다움만을 꿈꾸는 시인의 무책임과 해악을 비판하면서 시인과 몽상가는 본질적으로 ‘판이한 존재’ 임을 분명히 한다. 이 시에서 Keats 가 비판하는 몽상가란 현실과 의 유대를 상실한 채 몽환적 세계의 아름다움과 신비에 탐닉하는 시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는 그가 평소에 비판적 입장을 보이던 Wordsworth와 Colleridge를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이 몽상가에 대한 비판은 아이러니하게도 세기말에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하며 그를 추앙했던 현실도피적 예술가들을 예견하기도 한다. Keats는 시인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불행한 이들의 고통과 슬픔을 어루만져주고 그들에게 위안과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Endymion
르네상스기 이래 서구사회에서는 인간 개개인의 특성이 존중되어왔고 그래서 시인이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남다른 개성과 함께 독창성이 줄기차게 요구되었다. 그런데 Keats에게 시인은 자아를 소멸시키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존재이다. 시인은 마음이 텅 비어 있을 때 사물에게 가장 잘 다가갈 수 있고 또 그 사물의 본질과도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성과 불멸의 문턱으로 안내하는 이 공감적 상상력의 출발점은 어디까지나 섬세한 감각작용 즉 감흥이며 감흥으로 충만한 삶은 언제나 시인에게 기쁨과 행복을 선사한다. Keats는 부정력이란 마음을 텅비우고 온갖 세상사를 수용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을 텅비운 상태에서도 시인은 감각기관을 통해 흘러드는 온갖 자극들을 기존의 관념체계내에서 예술적으로 재구성하지 않으면 안된다. 감각작용에서 비롯되는 기쁨의 감정은 희열의 체온계로 비유되는 시인의 마음을 한 단계 한 단계 고조시키다가 급기야 최고의 강렬함으로 이끈다. 시인은 사물의 본질과 교감하는 신성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Sleep and Poetry
Keats는 앞으로 십년 동안은 시를 쓸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하면서 시인으로서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희열의 체온계와 동일한 단계로 설정한다. 처음에는 신화와 로망스의 세계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에 탐닉하는 단계이다. 다음 단계에서 그의 시는 점점 더 감각적이되고 더욱 더 선적인 면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강렬한 성적 교감의 단계에만 안주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시인은 더욱더 고귀한 삶으로 나아가 인간의 가슴속에 깃들인 고뇌와 분쟁을 최종적으로 노래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계획을 세운다고 다 실천되는 것은 아니지만 Keats는 그로부터 약 5년뒤 로마에서 세상을 떠나기까지 초기와 중간 단계를 거쳐 인간의 고뇌와 갈등을 노래하는 후기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To Autumn
형식상 이 시는 시인이 가을의 정경을 바라보며 영탄조로 가을을 서술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꼼꼼히 들여다보면 사실은 시인의 자아가 소멸되어 가을과 교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연과 2연의 이미지들은 인식의 주체인 시인과 인식대상인 가을이 풍요롭게 뒤섞여 “일종의 하나인 존재” 로 변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이 시에 재현된 가을은 정지된 모습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자연현상으로 몇몇 시간대의 서로 다른 공간에서 일순간 포착된 정경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시는 가을의 의식을 반영하는 시로서 의인화된 가을은 자신의 운동과 자신을 에워싼 사물들을 통하여 자신의 원래 모습을 드러낸다고 하겠다. 이 시는 주어를 이어받을 술어동사가 보이지 않는다. 이 시의 통상적인 구문으로부터 일탈함으로써 전체적으로 첫 연은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간다는 느낌보다는 단일한 상황이 완만하게 지속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변화하는 여러 상황들 가운데서 특정 시점의 특정 상황을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거기에 집중한다. 2연에서 고요하다가 3연에서는 가을의 음향들로 가득찬다. 시각적 이미지에서 청각적 이미지로 옮겨진다. 1연의 풍요로움과 2연의 이완된 휴식과 평온은 3연에서 찾아볼 수 없다. 시간적으로도 연마다 달라진다. 이는 계절도 마찬가지이다. 마지막 연에서 자연의 음향이 지배적인 것은 공간이 확장된 결과이다. 공간이 넓어져 사물과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시각보다 청각의 기능이 예민해진다. 또한 이 시는 개체의 죽음과 소멸은 자연의 운행과정의 일부일 뿐 전반적 흐름 내에서 연속성을 지속적으로 확보해 나간다.
제발;; 불펌금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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