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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10일 토요일
Geschichte der Stadt Wiesba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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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8일 화요일
동티모르 소모초 마을 물조사
주제연구 소모초 마을 물조사
발제자 : 박형락, 팀원 : 김수정, 오연주, 김해윤, 양인오, 정보영
지금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한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 있는 세계 20위 안의 국가 공통점은 역사적으로 순탄치 않은 고난의 시기가 있었다는 점이다. 미국의 독림혁명, 러시아 혁명, 수많은 나라를 통합한 독일의 탄생,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비롯해 30년 안에 경제대국을 만든 한국도 포함된다. 강과 함께 적절한 비로 살아온 한국은 물이 뒤받침되어 있어 식민지 시절의 고난 역사를 뒤로하고 동티모르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인간은 항상 불평하고 욕심을 무한히 내는 존재인거 처럼 늘 우리는 불평하는 생각을 가지며 끊없이 고민한다. 우리 소모초 마을 물조사 팀은 물의 중요성과 함께 이와 관련한 그들의 요구, 상황을 알수 있었고 우리의 열등감 속에 노력하는 모습이 뿌듯하기도 하다. 이번 물조사를 통해서 한국과 동티모르 사정을 심층적으로 비교하는 시간을 가져보면서 그들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느껴보기로 했다.
한국은 중국과 형제의 나라를 맺으며 살아갔다. 인간의 정신을 담당하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중간자 역할을 하면서 문명 흐름을 한중일 관계에서 가졌다. 한번도 침략해보지 않은 나라는 일본 식믾이후 한국전쟁으로 사실상 피폐한 삶을 살아갔다. 지금의 북한은 공업중심으로 인프라가 되어 있었지만 분단 초기 남한은 사실상 無의 상황이나 다를 바 없었다. 새마을 운동과 해외진출이라는 수많은 희생, 국가 시간을 1시간 앞당기는 정책으로 인한 아침형인간 및 빨리빨리를 중시하는 의식변화, 경제 개발 걔획은 수많은 부작용을 남기지만 200년 이상 걸린 선진국의 경제발전을 30년 이라는 엄청난 경제 성장률로 따라잡고 있다. 끊없는 우리의 선진국에 대한 열등감과 노력이 이루어낸 결과이다. 지금은 비데, 센서달린 물, 마실수 있는 정수기 물이 우리에게 존재하지만 끊없는 욕심을 내면서 엄청난 속도로 계속 발전될 엇이다. 우리가 보는 입장에서 동티모르 인들은 정말 행복한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행복과 열등감 그리고 노력은 동티모르인들의 물 조사를 통해 총제성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동티모르의 소모초 마을의 탄생은 타 마을에서 몇 명씩이주하면서 시작되었다. 이곳은 물이 없어 가족들이 다오지 못했다. 한사람씩 한사람씩 소모초에 모이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추측하자면 물을 빗물로 사용하며 의지하는 시기와 우물을 파서 물을 구하는 시기의 과도기 시기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주식은 옥수수였고 자급자족 생활을 하고 있다. 쌀이 수입된지얼마 되지 않았으며 쌀을 Vietnam과 Singapole에서 수입한다. 강, 풍부한 지하수가 없어 농업용수를 구하기 쉽지 않아 밭을 경작한다. 소모초 마을은 밭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밭그처 집에서 짐을 잔다. 풍부한 물은 없는데 쌀의 맛을 알아버린 이들은 이미 농업 속국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쌀시장이 무너지고 FTA이후 생기는 농업타격은 그들 처럼 농업 속국이 될지도 모른다.
그들이 주로 물을 사용하는 용도는 식수가 중심이 되고 가끔 밭에 사용하거나 씻는 용도로 쓴다. 조사에 의하면 물 긷는 횟수는 다양하다. 그들의 환경과 가족수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4식구 가정은 1주일에 3번 물을 긷고 엔진오닐 통 기준 10 basket을 담는다. 부모가 기른다고 한다. 길을 포장하다 사용한 물탱그를 농업용수를 위해 구비한 집도 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물탱크들은 모기의 애벌레인 장구벌레의 서식처가 되어있었다. 12식구 가정에서는 일주일에 4개의 드럼통을 사용하며 아이들이 물을 기른다. 소모초 마을에서 잘사는 4명의 식구는 하루에 2번 물을 긷고 Cart를 사용하며 일주일에 5~6 Drum 을 사용한다. 이들은 식수 뿐만 아니라 빨래, 씻기, 이닦이 등 물의 소비가 다른 곳보다 많다. 자급자족이 이 뤄지면서 생기는 빈부격차는 그들의 물 소비에서도 나타났다. 물 부족은 그들의 치아상태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대부분 칫솔과 치약을 가지고 있지 않다.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2번한다고 한다. 소모품에 대한 경제적 부담과 물부족이 결합되면서 생겼다. 함께 하지 못하는 날개는 이카루스처럼 태양에 녹아 촛농처럼 떨어지는 것이다.
그들이 물을 구하는데 있어서 주로 의존하는 것은 하나 밖에 없는 핸드 펌프다. 핸드펌프는 주민들의 요구로 수맥을 찾고 30m를 파고 내려갔다. 1.5m 쇠 드릴로 내려 수압방식으로 물깊이에 따라 펀다. 45m 밑에 있는 물을 끌어올린다. 건기 때도 핸드펌프를 사용하면서 버틸정도로 그들의 생명줄이기도 하다. 핸드 펌프가 없을때는 5km거리에 왕복 3시간 정도 걸어가 물을 길어야 하며 아이뿐아니라 전가족 모두가 물을 긷는데 동참해야했다. 지금은 왕복 15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에 핸드펌프가 설치되면서 물긷는 시간을 단축시켜 그들의 도다른 생활을 가질수 있도록 하였다. 모든 소모초 주민들이 사용하는 핸드펌프는 GCS에서 자금을 대고 선교단체의 기술을 접목시켜 기계적 매커니즘이 간단하고 고장이 적은 인도에서 수입하여 제작되었다. 큰 파이프안에 쇠관을 넣고 체인으로 물을 끌어올리는 핸드펌프는 재래식 우물과는 달리 고장이 잦다. 1년에 2번정도 생기는 고장은 주민들의 불편을 주기도 한다. 나무뿌리가 쇠관을 감아 고장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하나 밖에 없는 핸드 펌프는 다른 곳에도 파고 있지만 실패한 상태다.
또 하나의 물을 긷는데 있어 오후에 물을 기계 모터로 펌프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우물을 파고 발전기로 돌려 물을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이 모든 관리는 GCS 현지 간사 Bruce가 관리를 한다. 핸드 펌프보단 편하지만 사용시간이 있기에 주민들이 미리 물통을 갖다 놓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원시 적이지만 효율적인 비를 담는 방법을 사용한다. 펌프를 이용한 지하수는 불순물과 석회질이 많이 들어가 있는 반면, 빗물은 순수하다. 지붕 위에 파이프를 가로로 잘라 빗물을 모으게 하여 통에 담는 방식이다. 이러한 장치는 2달러를 GCS에 줘야한다.
이렇게 그들이 모은 물들은 한국의 정화 System 같이 정수 및 정화가 없기 때문에 원시적인 방법으로 물을 정화한다. 그들은 물에 대한 위생개념은 명확히 가지고 있다. 물을 오래 동안 담궈서 석회질을 가라앉히고 윗물을 떠서 마신다. 또한 햇볕에 오랫동안 두어 소독후 사용한다. 그리고 1시간 정도 물을 끓 여 마셔먹기도 한다. 물에 불순물을 거름종이로 거르기도 한다. 이는 공공 수도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미생물 같은 정수 개념은 없다. 단순히 물의 불순물에 그칠 정도다.
그들에게 물 긷는 작업에서 말, 리어카를 통해 편리하게 물을 긷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문화는 항상 서로간의 신뢰하는 문화가 아니라 리어카는 각각 1개씩 소유하고 없는 사람에겐 귀빈이 아닌이상 빌려주지 않는다.
왜 이렇게 수도 곡지도 없이 힘들게 물을 긷고 살아갈까? 에 대해 이젠 집고 넘어가야 한다. 요즘 수도 꼭지는 센서에 반응해서 자동으로 물을 씻는 시대가 도래하는 데도 말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전기다. 전기가 있어야 물을 끌어올릴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독립후 인도네시아군이 철수하면서 많은 시설 들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물과 전기만 봤을 때 독립으로 사정이 나빠졌다. 아니 오히려 사는 면에서는 인도네시아 시절이 나았다. 모터를 통한 공동수도는 게릴라를 통한 물품파괴와 함께 인프라 부족으로 사정이 나빠졌다. 특히 개인 적으로 사람들이 국가 전기 시설인 퓨즈를 훔쳐서 파는 바람에 남겨진 인프라는 없다. 어쩌면 스스로 눈앞의 이익을 위해 더 이상 외부세상과의 소통과 단절할 수 밖에 없고 계속 왔다갔다하면서 물을 긷는 불편을 감수 할 것이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그런데 많다. 대학생 또는 나름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물을 얻는데 있어서 선진국들이 사용하는 System에 고민하고 정부에게 요청하지만 정부의 힘이 부족해 이러한 의견에 대해 지지나 능력이 전무하다. 국가적으로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동티모르 내 에서 소모초 같이 핸드펌프나 모터로 사용하는 거 보다 더 힘든 곳이 많다. 그들의 꿈은 Solar System을 이용한 물 용수 공급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력 부족은 이상을 뒷받침하기 힘들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2010년도에 정부가 전기를 주겠다고 약속을 한 것이다. 현지 간사의 말을 빌리자면 2007, 2008 계속해서 해주겠다고 약속한 것이 어느덧 2009년이 되었다고 한다.
한국은 전쟁이후 인프라 파괴에 수많은 구호 단체의 도움을 받으면서 성장했지만 그렇다 고 구호단체에 의존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와는 다르게 동티모르는 개선능력에 집중하지 않았다. NGO에 대한 의존성은 장기적으로 정착하지 않는 NGO 특성 때문에 이의 안타까움이 더한다. 현지인들은 우리끼리 할 수 없다는 생각을 너무 쉽게 한다. 외국 원조에 대한 의지에 기다린다. 의지라는 것에 대한 기대함에 학습되어진다. 행복에 대하여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그런데 이번 물조사에서 좀더 발전하고 싶어 도와달라는 말과 불평은 그들의 진정어린 행복을 얻지 못했음을 짐작 할 수 있다. 행복 만 바라다가 경제 속국이 되는 것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에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다. 경제속국 속에서 행복은 어쩌면 세익스피어 소네트의 절규처럼 자기 합리화에 대한 절망과 내면의 외침 뿐이다.
NGO는 소위 말해서 현대 전도사이다. 나쁘게 보면 그들에게 호의로 다가오게 하고 다국적 기업이 그 호의를 이용하여 교류를 하고 이용한다. 따라서 무조건 도와주기 보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한것이다. 물만 봤을 때도 여러가지 문제가 분석된다. 사람들의 생각, 인프라 문제라는 하부적 문제는 빨리 이루기가 쉽지 않다. 많은 문화교류를 통해 많은 충격을 통한 자극이야말로 어쩌면 희망과 행복이라고 본다. 먼 훗날 어린이들이 사회에 나갈 때 스스로 동기 부여가 되어 물부족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말이다.
p.s 동티모르에 대한 관련 서적이나 자료가 부족한 것을 저희 단원들이 정리하여 만든 자료 책자가 있습니다. 경북대학교 도서관 -> '동티모르' 로 검색하시면 관련 책자가 있습니다. 책자의 목자는 http://phr1215.textcube.com/109
2009년 8월 17일 월요일
중국 영하회족자치구 국제청년 교류사업 참가 보고서
1. 행사취지
가장 큰 목적은 영하와 경북과의 관계가 아닌가 생각된다. 국내를 예로 들자면 전남과 경북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위해 경북대학교와 전남대학교와의 학생들간의 교류를 활성화 한다. 교환학생으로 선발이 되면 전액 장학금과 기숙사 우선입주가 된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프로그램은 인간과 인간과의 만남보다 그곳에서 여지껏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타지역 학생들이 몸소 체험하고 느끼면서 서로를 좀더 이해하는 자리를 가진다. 또한 이러한 프로그램 자체가 지역과 지역관의 우호증대에 큰 도움이 된다. 이 처럼 영하와 경북과의 관계는 작은 외교를 통한 신뢰와 우호를 쌓는데 도움이 될것이다.
2. 나에게 중국이란...
나는 문학을 좋아한다. 그리고 사상을 좋아한다. 내가 지원한 목적은 보다 넓은 생각을 가지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젊은 외교인이 되고 싶었다. 일반적으로 학교에서는 단순한 어학증명서를 보고 뽑기 때문에 어학증명서가 없는 나로서는 남에게 인정받기는 불리했다. 학과에서도 가게 될것이라고 했던 나에게 최근 독일 교환학생마저 떨어뜨리는 비운은 여실히 그 약점을 드러냈다. 그런 나를 뽑은 이유는 풍물과 많은 외국인과의 만남 그리고 2군데 학생회 활동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인지 모든 활동 일정마다 내가 주어진 임무가 무엇인지 뚜렷해 보였다. 어릴때부터 정치인이 되고 싶었다. 그렇지만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 강한 리더쉽이 필요할 것이다. 이번기회는 오히려 나에게 좋은기회였다. 왜냐하면 장기자랑반장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준비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4일도 안되는 시간에 완벽하게 해야했기 때문이다.
3. 중국에 대한 혼란..
확실히 중국은 기대 이상으로 성장함을 겉으로 보여주었다. 이렇게 가능한 이유는 사상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철저한 일당중심의 자본세상에서 만인 평등을 위해 나아가기 위한 준비단계인 사회주의 사상은 올림픽의 분위기를 한층 고조될수 있도록 국민들을 자극했고 철저한 환경 정리 등 정치적으로 할수있는 모든 것들을 다 하고 있는 거 같았다. (최근 신문에 중국의 2부제는 거의 완벽하게 실시된다고 했다.)
마르크스 유물론은 정의부터 모순이 된다. 인간에게 있어 물질은 그 나머지보다 우선이다고 했다. (그냥 기초가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를 나눠서 말이다.) 그런데 인간이 문명을 발전하면서 생기는 물질적 기대치는 일상의 공급가지고는 충족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애초부터 평등한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다. 엥겔스의 말을 빌리자면 역사적 변증법에 의해 평등했던 고대 시대에서 물질의 차이에서 그리고 계급 -> 봉건제 등을 거치는데 거치면 거칠수록 인간은 점점 자기의 위치와 평등의 문제점을 깨닫는 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투쟁속에서 자본주의로 도래하고 당중심의 공산주의가 생겨나며 모두가 평등할 때 당도 없는 정말 평등한 이상세계가 생겨난다고 했다. 따라서 마르크스적 유물론과 공산주의자가 생각하는 역사적 투쟁의식이 맞물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물질을 탐닉하는 인간으로서는 평등자체가 있을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동독의 경우 실패의 원인이 경제가 아니었다. 바로 사상의 문제였다. 어느 나라든지 부패하는 공무원은 다반사인데 특히 동독의 경우는 보여주기식 운영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체제에서 자본주의사상을 배타적으로 대했다. 이에 겉은 번지르르 한거 같지만 (대외적으로다.. 동독은 외신언론에게 다른건 다 보여줘도 자살율 같은 자신들을 격하시키는 통계는 보여주지 않았다.) 속은 불안하고 힘든 동독사람들이 교회에서 촛불집회를 계기로 체제가 무너진다. 북한의 경우도 금강산 관광을 통해 본바로는 2명씩 짝을 지어 북한인들이 도우미를 하는데 이런것을 통해서도 이미 다른 사상에 대한 배타주의가 여실이 드러난다. 육로를 통해 입국할 때 자세히 들여보면 아무리 노력해도 사실 다 보인다. 못산다. 물론 북한은 이제 더 이상 사회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이런거 아닌 다른 사상이라 예외로 하겠다.
그런데 중국은 특이할만한 점이 보인다. 바로 사상과 자본에서 사상을 내재하고 자본을 드러내었다는 점이다. 일상 생활에서부터 실천적으로 자본주의가 드러난다. 그렇다고 해서 이곳이 사회주의가 아닌 것은 아니다. 철저한 인터넷 검역부터 소위 공안이라 불리는 경찰, 강압적 사회 정책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정책에 대한 불만이 있으면서도 그것을 묵인하고 현실에 만족하는지는 의문일 따름이다. 그렇다고 해서 낭만주의자들은 아니였다. 특이한 중국인들의 성격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보편적인 이야기가 될거 같았다.
북경 시내를 둘러보면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여유로운 사람들이었다. 평일 점심시간도 아닌데 우리나라도 여유로운 사람들이 있다하지만 아무리 사람이 많은 나라라고 해도 정말 이해 할수 없을 정도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누리는 모습이었다. 갑자기 문뜩 떠오르는 것은 지금 이 체제에 만족하는게 아닌가 하는게 생각들었다. 자신의 처지에 맞게 사는 데 있어서 만족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정책을 잘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는 나의 지식에 한계가 있었다. 지금 베이징에 머무는 것은 이틀밖에 없었고 더 이상 깊이 더욱 깊이 느끼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안타깝게도 여기서 멈출 수밖에 없음에 지식의 갈증에 다른 시각으로 돌릴 수 밖에 없었다.
4. 배워야한다~
중국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버스기사가 여자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사회주의 나라에서 공통된 특징인데 사회주의 나라는 남녀가 평등하다는 사실이다. 이점은 지금 우리들에게 배울점이 많았다. 사회주의 사상에서 가부장제는 투쟁의 대상이다. 이미 독일에서는 로자 룩셈부르크가 속해있는 클라라 체트킨과 더불어 여성 사회주의 운동가 이자 여성운동을 주도 했던 클라라 체트킨이 있는데 그녀가 사실상 여성운동에 불을 지폈다 해도 무방하다. 그녀는 약자의 편에 섰으며 훗날 여성운동을 사회주의 운동과 결합시킨 사람이 아닌가 생각된다. (급진적 사회주의 여성운동의 시작은 아주 최근의 일인걸로 알고 있다. 그냥 시작 정도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사회주의적 요소를 문화로서 살짝 넣음과 동시에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일자리가 없어서 못찾는게 중요한것이 아니라 제대로된 능력의 인재를 뽑자는 것이다. 남편보다 마누라가 더 능력이 있다면 마누라가 일자리에 뛰어들어가면 되는 것이 아닌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나라의 Potential을 썩혀서 가정일을 하고 있는 여자도 많을 거 같다.
요즘 어느 나라든 고유가 시대라 힘든 판국인데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중국인들은 하나같이 극복해 내고 있었다. 물론 강제적이지만 대중교통에서 에어컨이 돌아가느냐 안돌아가느냐에 따른 차등가격제는 눈여겨 볼만하다. 그리고 승용차 2부제와 더불어 대중교통이 매우 싸게하여 사람들을 대중교통으로 유도한다는 구상은 굉장히 좋은 생각임이 틀림없다.
사람들이 중국의 사회주의 정책은 망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틀린말인거 같다. 이는 순수 사회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또는 순수 자본 옹호자에서의 견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믿을 수 있는 1당이 독점적으로 자본주의적인 요소를 이용하여 운영해왔기 때문에 중국이 이렇게 무시할수 없는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사회주의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국력의 분산을 방지할수 있음은 틀림없다. 캐나다 아니 선진국의 경우 경찰의 힘이 굉장히 강하다. 물론 캐나다의 경우는 그만큼 범죄가 우리나라보다 시각한 것은 사실아다. 그러나 이렇게 중국이 번영하게 된 이유는 강하게 밀고 붙인 정부의 정책이 아니었나 하는게 생각된다. 중국 북경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 나는 것은 다름 아닌 재개발 문제와 정부의 정책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재개발이 되면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없는 사람은 오히려 불만을 가진다. 꼭 이런 예가 아니더라도 잘못된 정책에 대해 무조건 적인 비판이 아니라 국력을 분산 시키는 거 보다 점진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하면서 시대의 흐름에 맞게 진행되어 중국 만큼은 아니더라도 국력 낭비를 막았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5. 비관론
모든 것이 대단한 것으로 보였던 중국.. 이미 언론에서 들어 볼건 다 봤고 들어 봤던 것은 다 들어 봤다. 그런데 뭔지 모르게 2% 부족해 보였다. 처음 비행기를 탔을 때부터 중국 항공기와 한국 항공기에서의 차이점은 명확했다. 서비스 자체로는 중국 항공이 오히려 좋았는데 그것은 바로 센스 였다. 나름 이어셋을 구비 놓았으며 착륙 전에 승객이 긴장하기 마련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항공사 승무원에 비해 오랫동안 일어서서 진정시키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중국항공에는 너무큰 문제가 있었다. 비행기 운행을 하는데 있어서 너무 거칠게 몬다는 것이다. 거칠게 조종하는 바람에 느껴지는 긴장감은 결국 승객에게 보여준 센스를 허공으로 날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또한 중국이 성장하면서 대외적으로 신임을 얻을 필요성이 있다. 경제성은 인정받겠지만 그 외 나머지 문화의식이라던지 문화수준을 생각해봐야 한다. 중국 고등학교 3학년 교과서를 보면 주로 Writing을 위주로 되어있었다. 교과서는 굉장히 칼라풀했지만 뭔지모르게 우리나라의 영어교육 문제점을 보는 거 같았다. Writing 과 Reading 위주의 교육은 이미 일본에서 실패한 교육이며 이미 그것을 차용한 우리나라에서도 실패를 겪는데 묘한 일처럼 중국에서도 그렇다고 하니 신기하기도 했다. 다만 교재의 구성이 우리나라보다는 실용적인 면이 강했다. 그리고 워낙 사람이 많아서 인지 몰라도 관광객이 많이 드나드는 호텔마저 대부분 직원이 영어를 사용할 수 없었다. 아직까지는 국민 하나하나의 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모르는 거 같다. 다만 고등학생들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구사하기 때문에 좀더 지켜 봐야할 문제였다. 한국의 경우에는 외국어 교육이 사실상 전국민이라면 중국의 경우는 높은 위치에 있지 않는 이상 배우고 싶은 사람만 배우는 것 같다. 과연 어학교육에 있어서 어느 쪽이 옳은 가에 대한 것은 조금더 지켜봐야 할듯하다.
얼마전 대기업에서 승진을 한 사람의 인터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가 아무리 어학실력이 좋아도 결국 날고 기는 사람 천지였고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짜내어도 그것마저 날고 기는 사람이 천지 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학창시절에 배웠던 인문학을 다시 공부했다고 한다. 결론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였다. 책은 직접적이지 않지만 간접적으로 나마 사고력을 기르며 안목을 넓힌다. 중국에서 책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아니 책이라는 것에 전혀 문외한거 같았다. 특히 중국 가정집에서는 학교 교과서만 봤다. 서점도 대부분 외국책을 해석하거나 차용한 책들이 전부였고 독창적이지 못했다. 문화인으로서 기본이 되는 책을 사람들이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듯하다. 다른 선진국 외국인이 보는 우리나라의 시각 같은 그 기분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만 비행기내에서 이야기 했던 잘사는것 같은 중국인은 (짐작이다. 왜냐면 은천으로 놀러간 베이징인 이였으며 옷도 중국인 답지 않았고 어머니가 영어를 사용하며 초2학년 아이가 수줍어서 말은 잘 못했어도 영어를 조금 사용했었고 한국을 얕잡아 봤다.) 기내에 나가면서도 책을 놓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길게 이런 이야기를 한 이유는 바로 우리나라와 비슷해서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국과 마찬가지로 이공계를 중점으로한 실용주의 정책을 펼친다. 그런데 외국 선진국과 차이가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기초 학문이다. 외국 선진국의 경우 오랜 시간동안 기초학문이 제대로 닦여 있는 상태다. 그렇기 때문에 기초 학문을 토대로 발전하는 이공계의 힘은 실로 어마어마 하다. 반면 한국의 경우 기초학문이 부진하고 또한 기피하기 때문에 밑바탕이 안되어 있는 상태에서 실용정책을 펼치다보니 외국에서 들여온 원서를 통한 학습을 단행한다. 원서를 통한 공부가 당연한 듯해 보이지만 이는 실로 엄청난 국가 손실이다. 왜냐하면 기본을 딲기위한 기초 작업을 위해 해외에서 끊임 없이 돈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그것을 중국이 답습하려고 한다. 좀더 이해를 위해 예를 설명하자면 게임이든 백신이든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엔진이 필요하다. 엔진은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몸의 뼈다. 그런데 이러한 엔진을 현실이 수요에 맞게 만들기 위한 기술력이 우리나라는 부족하다. 따라서 백신의 경우 엔진을 러시아, 동유럽에서 직접 사서 만들며 (알약, 네이버) 게임의 경우는 미국, 유럽에서 사가지고 변형을 시켜 만든다. 결국 한마디로 우리나라 국산 프로그램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뜯어보면 전부 외국 제품이다. 이게 바로 이공계의 현실이다. 일본의 경우 이러한 엔진을 만드는 기초 기술이 발달되어서 외화 낭비없이 기술을 만들고 있지만 정작 우리나라는 겉으로는 엄청난 판매량과 수출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많은 수익의 일부를 해외에 다시 보내는 꼴을 나타낸다. 한마디로 말해서 무조건 무조건 실용, 이공계가 중요한것만큼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그렇다 치더라도 중국의 경우는 아직까지 충분히 갈고 닦을 수 있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빠른 실용노선을 타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든다.
중국의 경우 일반 사회주의 인터네셔널과는 다른 엄청난 개혁과 실용노선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최고의 대학이 바뀔정도다. 앞으로 중국은 계속 지켜볼 필요가 있다.
6. 역사가 말한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것은 엄연한 명제이다. 한때 영어도 우리나라와 같은 문법 체계였음에도 불구하고 노래, 시에서 나오는 구절은 리듬이라는 이유로 동사와 서술어의 위치를 바꾸게 되고 이는 지금의 영어 문법이 되었다. 그리고 동사는 주어 다음에 나오기 때문에 사람의 생각을 바꾸며 이는 문화로 그리고 그 나라 돌아가는 형세를 바꾸게 되어 버렸다.
오래전 중국역사에서 게르만 민족이 영국을 점렴했음에도 불구하고 찬란한 문명에 동화되어버리고 (로마도 마찬가지로..) 중국의 변방민족도 한때 한족을 지배했으나 한족의 문화앞에 무릎을 끓고 말았다. 문화는 강하다.
중국의 문화제들은 끊없는 보수공사로 한창 진행중이다. 그 만큼 문화가 중요하다. 그런데 중국인의 특성인지 모르겠으나 겉만 번지르르 하지 그 외의 문화 산업에는 한계점을 노출한거 같았다. 중국 내에서 실용주의가 과연 기초학문을 이길수 있는 지 의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미 서양 문물이 점령하다시피 했다. 우리 팀원이 선물로 준것을 외국 사람이 뭐냐고 물어보면 모를 정도로 무관심하다. 이미 우리는 한국인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것을 중국에서도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부분이 있다. 무절제한 서구 문명의 유입과 빠른 개방화로 사람들이 아노미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고등학생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진을 내밀고 애정행각을 하는 모습을 서슴없이 보여주면서부터 이런 생각이 시작되었다. 너무 급변하는 중국에 적응 하지 못하는 중국인들은 부적응 모습이 드러나는 거 같았다. 교통수단은 발전하는데 교통의식이 없었고 밤길 치안 문제를 방지하기 위한 가로등 설치 필요성 등 세밀한 부분이 아쉬었다. 이러한 문화의식과 경제성장의 차이는 이미 교과서에 배웠고 역사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거기에 끊임 없이 밀려오는 선진 외국 문물의 급속한 유입에 분명 중국정부는 과거의 게르만 민족, 만주족이 되어버릴지 아니면 일본인 이 되어버릴지는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중국인중 한명이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우리나라처럼 시험을 치고 학교에 입학한다고 했다. 내가 농답삼아 입학 안되면 어떻게 되냐고 하니까 농부나 상인 같은 일을 하기 싫다고 말을 했다. 나는 중국도 별반 다를 바 없구나 생각했다. 그러면서 중국도 자본주의 경쟁체제라는 마약에 벗어날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언제나 그랬듯이 역사는 계속되는 투쟁의 역사다. 농민은 항상 가난하고 이것은 역사적으로 증명이 되었다. 북경에 막노동하는 사람도 항상 가난하다. 제아무리 열심히 일을 한다고 해도 결국에는 몸 병신 되고 먹고 사는 데 그이상으로는 올라갈수 없다. 이러한 경쟁속에 이곳이 무슨 사회주의 국가인가 라는 생각이 들고 모순과 모순이 거듭하는 이나라에 미래는 어떻게 될까하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미국이나 유럽처럼 서구적인 직업정신을 가진 사람들의 모델이 오히려 우리나라는 배울 필요가 있을듯 했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미개인이든 문화인이든지 간에 항상 이리저리 당하기만 했다. 아주 불쌍한 역사이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가 되풀이 되려고 한다. 지금 중국은 다시 번창해 지려고 한다. 이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역사가 되풀이 될지 다시 쓰여지게 될지 결정될 것이다. 우리가 중국의 경제성장을 따라잡는 다는 것은 아닐 수도 있지만 지금 으로써는 힘들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보다 우월한것은 선진적인 문화의식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본다. 투쟁의 역사가 아직 중국에는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분명 These가 있으면 Anti These가 존재한다. 중국의 Anti These는 경제적 Potential만큼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Anti These를 완충시키려면 가까운 우리가 어쩌면 필요할지 모른다. 문화상으로도 비슷하고 이미 서민층사이에도 인터넷 보급으로 알려진다면 어쩌면 문화와 경제 격차를 벌어질때 서구보다는 아무래도 우리가 아닐까 하는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또한 우리들의 특유의 시적 문체는 중국에서는 통할것이고 해석또는 해설도 가능하다고 본다. 정말 답답할 때 이번 중국에서 내가 사용한 것은 한자사전 또는 내가 알고 있는 미약한 한자로 글을써주면 어느정도 통했다. (물론 영하의 영자는 달랐는데 앞뒤 이해해서 알아맞추더라.) 따라서 문화의 비슷함을 잘 이용하여 문화시장에 진출함도 나쁘지 않을듯하다.
7. 어안이 벙벙 하다...
북경의 전자상가를 가는 첫발은 굉장히 설레였다. 그리고 들어가는 순간 뒤돌아 가고 싶었다. 이미 전자시장은 어느 나라를 가든지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대단하지 않았다. 3년전 활개를 쳤던 용팔이들도 있었다. 그 외에는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이곳에서도 소프트웨어 시장은 죽은거 같았다. 불법복제의 근윈지에서 무엇을 바랄 것인가? 하지만 이러한 점에서는 높이 살만하기도 하다. 미국에서 붑법 릴이 터지면 중국이나 독일로 거쳐간 뒤에 한국으로 들어오거나 직접 들어오는데 그만큼 중국의 IT 실력은 대단하다. 하지만 좀더 자세히는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여기는 단순 전자상가기 때문이다. 전자 상가에서 파는 사람들은 영어를 할줄 몰랐다. 그리고 눈 여길 점은 불법 사이트를 통해 우리나라 드라마를 실시간 스트리밍 중국 자막으로 시청하고 있음을 봤다. 물론 HD버전이었다. 어디서 들은 이야기 였는지 모르겠지만 중국 텔레비전은 거의 100% 중국어 더빙인데 한국 사람들 처럼 이 들도 더빙버전은 싫어 한다고 한다. 만약 내가 조금 용기를 내었더라면 한국 방송 방연 1시간 뒤에 미국 한인들을 위한 사이트에서 불법으로 스트리밍 시청할수 있는 사이트를 가르쳐줄것을 그랬다.
중국인들의 인터넷 사랑은 이미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최대커뮤니티는 DCinside인데 이곳은 지식인들이 마음껏 솔직하게 털어놓는 무섭지만 재미있는 공간이다. (뉴스에서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서 무슨 사건 터졌다하면 바로 이곳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일본의 경우는 2CH이 있으며 중국의 경우도 있는데 이렇게 한, 중, 일의 커뮤니티 사이트를 다시 연결해 주는 사이트가 바로 우리나라의 모 사이트다. 이 곳에는 사실상 엄청난 외교전쟁부터 시작해 젊은이들의 솔직한 글들이 많이 드러난다. 중국인들도 여기에 정말 무섭고 위험한 수위의 이야기 까지 한다. 심지어 천안문 이야기 까지 들먹일 때도 있다. 하지만 확실히 각 3국의 나라의 입장은 정말 다르다. 결국 자기나라 중심의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인정하면서도 대치를 이루는 이러한 공간 속에서의 사이버 상의 교류를 몸소 느끼고 싶었다. 속된말로 찌질이들을 보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찌질이 들은 볼수 없었지만 이번 교류 프로그램에서 알 수 있었던 사실은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가 인터넷으로 너무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재미와 생각 관심사가 서로 비슷해 졌다는 것이다. 서먹서먹한 중국 고등학교 남자들에게 나는 게임이야기를 했는데 그 뒤로 말이 트였다. 왜냐면 나도 그 게임을 즐기기 때문이다. 다만 어느 일정 서버를 통제하는 듯했다. 서버 위치를 가르쳐 주려고 했는데 안된다고 한것같았다. 다만 직접들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국가 외교 문제 이야기가 나올때 위에 있었던 사이트에서 설전을 벌이던 중국인과 같았음에 흥미를 느꼈다.
8. Wir sind eins
유럽의 경우는 EU를 통해 유럽 르네상스의 재기를 꿈꾸고 있다. 몇 년전 화폐를 개혁했다. 그말 자체만으로도 엄청나다. 그만큼 유럽은 자유경제 시장에서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 그리고 유럽경제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지금도 그 가치가 계속해서 상승한다. 교류학생을 통해서 가장 크게 다가온점은 중국사람이든 일본사람이든 우리나라사람이든 간에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기본 상식일수도 있지만 몸소 느낀 것은 전율을 느끼게 한다. 어쩌면 중국과 우리나라가 서로의 우호와 신뢰를 더 높이 쌓을 수만 있다면 EU못지 않은 경제 블록을 만들 수 있고 하나가 될 수 있다. 역사문제나 인종 성격의 문제 여러 가지 장벽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경우는 특별하게 그런 부분을 재기 하지 않는 다는 것에 특이함을 제기한다. 어쩌면 역사문제는 오히려 유럽쪽이 더욱 심각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승전국과 패전국이라는 위치에서 승자의 입장에 놓이는 바람에 조용하지만 말이다.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부정적 입장을 가지게 된것은 단순 문화차이를 떠남을 주장하고 싶다. 이미 대학교 강단에서도 중국인들의 문제점은 이미 쉽게 노출되어 있다. 서로가 끼리 끼리 모여 한국어를 배우러 왔으면 노력은 하지 않고 중국에서 못하는 일들을 한국에서 일삼는다. 그리고 도둑, 여자 기숙사 출입 (소문이다. 그만큼 부정적이다.) , 학교 내 소란 (싸움 등) 을 주로 일으 키고 목소리가 커서 기숙사생들이 잠을 못자는 일도 간혹 벌어진다. 물론 일부의 중국인들이 겠지만 이런 일들 때문에 국제적 망신을 주고 있다. 그러나 교류학생 프로그램이 있을 몇일전 중국 대표 유학생 한명이 학교게시글에 글을 올리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교류학생 선발과정에서 중국 대학의 행정적 부실함에 따른 일부 잘못된 학생들이 우리나라로 유학 온다는 사실이다.
이번 교류학생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신경썼던 것은 나같은 중국어를 구사할줄 모르는 한국인이 과연 중국인들과 대화를 통해 어떤 감정을 가질까이다. 이 컨셈 하나만 믿고 대화에 끊임 없는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다. 북경시민들과는 많은 교류를 못했다. 안타깝게도 일정 자체가 단체관광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시인으로서 삶에 찌들려 있었고 지극히 개인적인 모습이었지만 먼저 용기있게 다가서니 할아버지, 아이, 어른들도 쉽게 다가섰다. 하지만 대화를 못해 아쉬었다. 언어가 문제가 아니라 시간과 일정의 문제 였음을 이 자리에거 적는다. 공안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주위 눈치를 많이 살피는 모습이었다. 아무도 없는 사적 공간에서는 확실히 그들도 친절했다. 아니 같이 놀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전자 상가안에서의 공안의 경우는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화장실 뒤편에서 놀고 있었는데 그때 그 느낌은 금강산에서 높은 자리로 예상되는 남자 안내원 (아닌거 같지만) 과 대화할때의 경직함 보다 더 친밀했다. 오해의 말이 될 수 있지만 금강산에서의 북한 사람들은 아무리 친절하게 대해주고 사적인 말도 조금 오갔지만 남의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중국인들은 아니었다. 은천에서는 더욱 정감이 있었다. 북경 사람들과는 다르게 순박함이 더했다. 특히 미용실 사건은 잊을 수가 없었다. 한국 사람이라고 말을 안했는데 한국말을 나도 모르게 하자 눈치를 채고 한국 음악을 트는 모습은 인상 깊었다.
세상 돌아가는데서 도구가 인간의 사상을 다스린다고 했다.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있지만 그래도 진리다.) 좀더 경북이 은천과 많은 교류를 나눌수 있도록 시스템상으로 좀더 노력이 필요 할 듯하다. 특히 중국의 입장에서는 환경문제는 심각하다. 환경이 나쁘면 (아참!!! 독일이 잘하면 중국에 눈독들일 수 있겠구나!!) 자연스레 다른 나라에서 나쁜 시선을 보낼 수 밖에 없다. 특히 전세계의 문제지만 꾸준한 경제 성장과 함께 같이 국민 복지도 신경써야 하는데 그러하지 못하면 자연스레 불만이 터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환경오염문제를 다함께 이겨내자는 취지로 한, 중, 일 교류로 서로가 하나 될수 있는 좋은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9. 다시 한번 나에게 있어서 중국이란..
헝가리인과 대화를 하는데 갑자기 독일어로 대화를 했다.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3년동안 그래도 공부를 했는데 내가 이해를 못해 크게 당황을 한 것이다. 하지만 문학과 사상이야기는 잠깐의 시간이지만 교감을 느꼈다. 그런데 잠깐 북경을 떠올렸다. 우리 일행의 말도 그렇고 이상하게 영어쓰는 사람보다 독일어 쓰는 사람이 북경에 많았다는 것이다. 나도 들었기 들었다만 악센트가 워낙 약해 긴가 민가 했었는데 말이다.
그때 생각했던게 지금 이 프로그램이 나에게 무엇을 주느냐이다. 나는 분명 한국의 문화와 다이나믹함을 소수에게나마 알리면서 보람을 느꼈고 홈스테이부터 시작해서 다른 중국인들까지 상처주지 않는 전제로 한국을 끊임없이 알리는 역할을 했다. 그때 중국인들은 나에게 굉장한 관심을 가졌고 나는 사람사람 개개인으로써 컨셈을 맞춰 알렸줬다. 한사람에게는 술자리 문화를, 한사람에게는 교육 정책을, 한사람에게는 쇼핑문화를 등등등 이것저것 사람 사람 마다 신경쓰면서 대화를 하며 한국을 알렸다.
그런데 정작 내가 받는 것이 없는 거 같았다. 좋은 경험? 이런것은 얼마든지 있다.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지만 나에게 와닿지는 않았다. 일정이 끝나고 나에게 얻을것이 무엇일까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첫째는 용기였다. 대학교 2년 동안 생활해 오면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의 기회는 있었는데 대부분 국대 였지 해외였다. 그런데 이번에 택한 해외 프로그램은 다음번 기회가 있을때 놓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조금 넓은 사고와 시각을 가질수 있었다. 이를 통해 다시한번 나에게 많은 생각과 비평거리를 제공했다. 세 번째는 어학문제였다. 스스로 어학에 대해 실력이 없지만 그래도 공인증명없이는 남에게 인정 받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 프로그램은 다행이 공인 증명서가 필요치 않아 무사했었지만 다른 프로그램들은 그렇지 않아 계속 이런 프로그램을 하고 싶으면 공인 성적을 따야 겠다는 초조함이 생겼다. 네 번째는 고민이다. 나의 특기와 전공을 어떻게 살리면 이번 프로그램과 연관 시키느냐다. 위 글처럼 이상하게 독일인이 북경에 많았다. 우연인지 그른지 조금더 알아보고 거기에 맞는 나의 길을 구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가장 결정적인것은 중국은 나에게 나의 위치를 말해줬다. 수많은 희생이 분명 자리잡을 것이고 그 결과물이 북경에 있다. 스탈린의 말이 생각난다. 한사람이 죽으면 비극이고 다수가 죽으면 통계다. 라고.. 내가 정말 노력하지 않으면 이들 처럼 혼자만의 비극이 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의 부족한 언어능력은 여실히 드러냈지만 그래도 서로가 이해한다는 것에 위안을 삼고 다음에 올때는 완벽하게 구사할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10. Massnahme (맺음말)
재정을 무시하고 야구선수 연봉 40억짜리 4번 타자 FA선수 A가 있다. 그리고 유망주 고교특급 2명인 B가 있다. 일반적으로는 A를 스카우트는 선택하겠지만 굉장히 애매하다. FA선수는 대개 오랜기간동안 인정을 받아온 선수이고 능력이 뛰어난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변수가 있다. FA선수는 대부분 잠재적 부상을 가지고 있다. 쉽게 말해서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해 무리하게 운동한다는 것이다. 부상을 숨길때도 있다. 그렇게 때문에 대개 FA선수들은 몸값에 비해 제 역할을 하지 못할뿐더러 팀의 엄청난 추락의 위기를 맞게 한다. 마치 공식화 되어 버려 이제 FA는 이제 어느 나라나 대박이라는 말이 없어졌다. 있으면 큰 이슈가 되지만 잠깐이고 팬들은 환호하다가 막상 팀의 위치에 걱정한다. 그래서 요즘은 특별한 경우아니면 자기팀에서 프렌차이즈식 FA 계약이 태반이 되었다. 그리고 그 돈 가지고 유망주를 찾는 것이 급선무다.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에 우리는 서있는거 같다. 하나는 실력은 입증이 되었지만 숨겨진 부상의 Potential과 40억의 엄청난 돈을 감수 할것인가? 아니면 실력은 입증되어 있지 않지만 성장 Potential을 가지고 있고 1500만짜리 선수들을 살 것인가?
2009년 7월 5일 일요일
여성학의 이해 REPORT (MBC 스페셜 ‘가족’ 어머니와 아들을 보고...)
여성학의 이해
REPORT
(MBC 스페셜 ‘가족’ 어머니와 아들을 보고...)
과목명 : 여성학의 이해
담당 교수 : 김성애 교수님
작성자 : 2006006015 박형락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모자관계가 있었다는 것은 기억이 없었는데 인터넷으로 조사해보니까 원래의 가족이라는 인터뷰 다큐멘터리가 너무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았기 때문에 다른 주제로 추가 방영을 했다고 한다. 우리 집은 아버지, 어머니, 외할머니, 나, 동생 이렇게 구성되어있다. 즉 어머니 입장에서는 아들이 2명이나 된다. 그래서인지 다큐가 어떻게 보면 나의 거울이 되고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미래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나의 관심을 끌었다.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은데 아들은 딸과는 다르게 태어나자마자 집에는 경사가 났다. 그리고 어린 딸에게는 약하고 예쁘게 기운다면 어린 아들에게는 강하고 씩씩하고 험한 세상을 살 수 있도록 한다. 즉 어머니는 아들을 남자답게 키우는 것이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사회적으로 남성 중심적인 사회이다. 그리고 주위에서 보면 아들이 부모님에게 물질적인 경제를 보조해주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지금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이 아들이 나중에 가족 전체의 생계를 책임지는 현실 사회 구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머니는 아들을 강하게 키우려다 보니 아들이 어릴 때는 개구쟁이로써 말썽쟁이로 보여준다. 즉 딸의 어린 시절의 모습과는 다르게 아들은 빨리 어머니와 전쟁을 하는 것이다.
사춘기에 접어들게 되면 아들은 성에 눈을 띄게 되고 그러면서 다른 성인 어머니와의 부끄러운 관계를 볼 수 있었다. 물론 딸도 성에 대한 호기심이 있겠지만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같은 성의 차이라는 점에서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반발심이 점점 심해지며 강하게 키워진 아들은 독립심이 커져 어머니와 충돌을 하게 되고 아들은 이탈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공감이 안가는 부분인데 왜냐하면 그 당시 사춘기때 나는 병원생활을 쭉 해왔기 때문에 사춘기 갈등을 못 느꼈다. 동생에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보는 입장이라서 그런지 나도 이해를 못하겠다.
옛날부터 가족의 부양은 아들이 진다는 말처럼 이로 인해 가족에서 아들이 인생을 결정짓는 수능은 가족 전체가 전쟁인 것 같다. 그 중에 어머니는 이 때 모든 사랑과 희생을 보낸다. 어머니도 나름대로 하고싶은것이 있었을 텐데 모든 것을 내려놓고 희생하신다. 너무 극성인 어머니를 보니 개인적으로 비호 감이었는데 그래도 어머니의 그만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바친 어머니는 아들의 진로 문제를 통해 또 아들과 갈등한다. 아들이 하고 싶고 가고싶은게 있고 한계를 느끼는데 어머니의 꿈과 목표는 아들에게는 이상인 것이다. 그래서 서로의 시각차가 뚜렷하게 나서 갈등이 일어난다. 이 모습을 볼 때 아들에게 있어서는 현실과 이상에 대한 조율을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게 아닌가하는 긍정적인 생각이 든다.
어머니는 가정에서 아들만 있을 경우에 직장에 갔다가 오면 집안일이 다 되어있지도 않고 남자 즉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놀고 있는 모습에서 남녀차별을 느끼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에서 우리 집의 모습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이러한 남녀차별 속에서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여자의 입장에서는 이해 못한다고 인터뷰에서는 말했다. 하지만 아들도 어머니의 사랑을 알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표현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것은 아마도 남자는 세 번 이상 울지 않는다는 말처럼 어떤 남자다움이라는 사회의 구조 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도 딸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결국 사랑하게 되는 데 그러다 보니 어머니의 사랑을 잊은 채 애인에게 몰두하는 것을 통해 어머니는 섭섭함을 느끼는 모습이 있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나니까 아내의 극성 즉 고부갈등으로 어머니는 점점 작아지는 모습을 보이셨다. 어머니는 아들이 아내편만 든다고 생각하고 섭섭해 하시고 아내를 못마땅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모습은 어쩌면 사랑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즉 아내가 남편에 대한 사랑과 어머니가 아들에게 대하는 사랑은 서로 다르겠지만 어쨌든 사랑이 서로가 하나에게 주려다보니 갈등을 일으키는 것 같다. 그 사이에서의 아들의 심정은 더 괴로울 것이다. 마치 엄마와 아빠 중에 누가 더 좋냐 는 식의 논리랑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는 모습에서 더욱더 희생하신다.
처음 태어나서 사랑하는 사람과 첫 만남은 어머니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어머니는 모든 것을 희생하시는 모습에서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사랑 즉 주기만 하는 사랑으로써 보인다. 비록 나도 말로써는 한마디도 사랑한다고 어머니께 말한 적은 없으나 어머니에게 꼭 사랑을 갚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시간의 다큐멘터리 방영 도중에 아들에게 극성으로 출세해라고 희생하는 모습에서 남학우, 여학우들의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드러내었고 심지어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예전에 부모님께 직장의 남녀차별에서 직장에서 사람을 뽑을 때 단지 실력으로 남자, 여자를 구분하지 않고 뽑고 나서 남자와 여자를 비교하면 여성이 남성을 실력으로써 압도하게 되고 그렇게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막상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여성은 직장을 위한 것이 아니고 직장에 대한 야망을 가지는 모습이 아니라서 직장의 일에 실적은 좋아도 직장에서는 단순한 실적만 가지고는 발전할 수 없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남녀차별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씀하신 기억이 있어서 결국 사회적으로 봤을 때 남자가 가족을 부양하고 가족은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남자의 출세를 위해 헌신을 하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사회적인 문제도 있지만 이것을 변화시키기 위해 남자, 여자 모두의 남, 여 역할의 인식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다큐멘터리를 보고 어머니의 대한 사랑과 함께 가정속에서의 숨겨진 남, 여 차별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함부러 불펌하지는 마세요;;; 제발;;
골프룰
1) 플레이할 홀의 출발 장소를 말한다. 이것은 2개의 티마크의 외축을 경계로 하여 전면과 측면이 한정되며 측면의 길이가 2클럽 길이인 직사각형의 구역이다. 볼 전체가 이 티잉 그라운드 구역 밖에 있을 때에는 티잉 그라운드의 밖에 있는 볼이다.
2) 볼은 플레이어가 티잉 그라운드에서 스트로크를 할때 곧 "인 플레이"가 된다. 그 볼은 분실되거나 아웃 오브 바운드이거나 집어 올렸을 경우나 혹은 적용되는 규칙에 따라 다른 볼로 교체되었을 경우를 제외하고 홀 아웃될 때까지 인 플레이 상태를 지속한다. 단, 교체구의 경우 적용 규칙이 볼의 교체를 허용하든 안하든 상관없이 교체된 볼이 인 플레이의 볼이 된다
3) 다음 구역을 제외한 코스의 전 구역을 말한다. 플레이 중인 그 홀의 티잉 그라운드와 퍼딩 그린, 코스 내의 모든 해저드
4) 움직이고 있는 볼이 국외자에 의하여 우연히 방향이 변경되거나 정지된 경우를 말한다.
강의명 : 골프
담당 교수 : 김정태 교수님
상황에 따른 골프 룰
1. 처음 티 샷의 순서를 핸디로 정했다면....
(문) 라운드의 티 샷 순서를 정할 때 우리나라 특유의 양보 정신이
발휘되는 경우를 자주 본다.
때로는 "나이순"이나 "핸디순"을 제의하기도 한다.
그러나 엄격히 말해서 이는 룰 위반이다.
(답) 스타트 전에 조 편성표가 미처 작성되지 않았을 때 "제비뽑기"등으로
정하는 것이 "옳은 순서 정하기"이다.
동전이나 티 팩을 던져서 앞뒤에 따라 정한다거나 가위바위보 등으로
하는 것이 룰에 위반되지 않는 방법이다.
공식적인 경기 때 행여 규정에 어긋나는 방법으로 플레이어 한 사람이
유리하도록 차례를 정했다고 판단되면 그에 동의한 플레이어들 모두가
경기 실격이 된다. (제10조)
2. 티 샷시 공을 반드시 티 팩을 이용해야 하나?
(문) 티 샷 때는 누구나 티 팩에다 공을 올려놓고 티 업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시즌에서라면 푹신한 잔디로 바닥을 이룬 티잉 그라운드에다
그냥 티 업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때 팩을 꽂아 쓰면 자칫 티 업이 너무 높아져서 볼이 하늘높이
올라갈 염려가 있다. 그러므로 드라이버 이외의 클럽을 쓸 때는
팩 없이 잔디 위에다 직접 공을 놓는 편이 좋을 때가 있다.
잔디가 티 팩을 대신해 준다.
(답) 룰에서는 티 팩을 써야 한다는 규정이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티의 표면을 볼록하게 돋구거나 모래나 그 외의 것으로 알맞게 높이를
다듬어도 된다고 했다(제11조)
잔디가 깍아 잘리거나, 잔디가 성겨서 딱딱한 맨땅이 드러나는
티에서 그 점을 알고 있으면 굳이 팩을 쓸 필요가 없다.
갖고 있는 팩이 하나도 없을 때 성냥갑이나 필림통을 사용해도 무방하다.
3. 공 뒤의 바닥을 눌러 다졌다면..
(문) 티 업을 했는데 공 뒤의 땅이 다소 불룩할 때가 있다.
신경질적인 사람이라면 임팩트 직전에 클럽의 밑이 혹시 땅에 부딪치거나
않을까 하며 염려할 때가 있다.
하지만 멋모르고 공의 라이에 영향을 주는 행동을 하면 패널티를 물어야 하는
곤경을 겪는다. 그런 생각이 있는 사람은 공 뒤의 땅을 신발로 밟거나 클럽 밑으로
꾹꾹 바닥을 다지기도 하는데 "저렇게 해도 괜찮은가?"하며 의아해
하는 사람이 있다.
(답) 공을 일단 티에서 쳐내면 "인플레이의 볼"(정의 6)이 되는데
아직 티 샷을 안한 공은 "플레이 중의 공"이 못된다.
그리고 플레이 상태가 돼있지 않은 공은 손으로 건드려도 괜찮고
공 둘레의 땅을 만지든 밟든 룰에서 문제되는 아무 것도 없다.
따라서 치기 좋은 상태로 매 만져 놓고 공을 치는 것이 상책이다.
4. 공이 바람에 흔들린다면...
(문) 스윙하는 순간에 새찬 바람이 불어서 티 업한 공이 떨어질 것 같다.
곤란하게도 공이 흔들거리고 있으니 동작을 계속할 수도 없다.
이때 "이거 안되겠다. 움직이고 있는 공은 쳐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하며 깨닫고는 클럽 쳐 내리는 동작을 중지했다.
(답) 첫째로 이 경우 역시도 "인 플레이의 공"이 아니다.
즉 백스윙 중에 중지하면서 클럽을 쳐 내리지 않았으니까 룰 상의
"스트로크"가 안된다.
따라서 비록 공이 티 업에서 굴러 떨어졌더라도 "인 플레이"가 아닌
이상 노 패널티가 된다.
둘째로 바람이 룰에서의 "국외자"가 아니다.
즉 플레이하고는 관계가 없는 제 3자에 해당되지 않는다.
따라서 인 플레이 공이라면 멎은 위치에서 그래도 쳐야된다.
그러나 현재로 봐서 결국 "움직이고 있는 공"도 아니다.
공 위치가 변한 것도 아니니까 룰 면으로 따져서
움직인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5. 치는 순서가 뒤바뀌었다면...
(문) 티 그라운드 옆에서 기다리면서 동료 플레이어와 말을 나누고
있었는데 "선생님, 이제 치셔도 돼요!"하며 부르는 캐디의 목소리다.
냉큼 걸어가서 멋진 폼을 잡고 치긴 쳤는데 티 업의 차례가 3번째인데
까맣게 잊고 2번째로 쳤다.
(답) 스트로크 플레이라면 치는 차례를 어겼어도 패널티가 붙지 않는다.
2번째에 쳐야할 플레이어에게 "죄송합니다"라고 한마디 사과하면
된다. 이것은 에티켓으로 그칠 문제이다.
만일 옳은 차례로 다시 치거나 하면 "스토로크와 거리"의 벌타와
함께 처음 친 볼은 "분실구"가 되고 다시 친 공이 제 3타로서
인플레이공이 된다 (제27조).
6. 티 구역 밖에서 쳤다면.....
(문) 티잉 그라운드1)에서 티 업을 할 때는 어느 구역에서 하라는 정의가
룰에 명시돼 있다. 그런데 특별히 막거나 줄을 그어놓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자칫 "구역"에서 벗어난 위치에다 티 업해서 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특히 잔디가 죽어 있는 티라면 잔디가 잘 돋아 있는 장소를
고르다가 구역 밖에다 티 업하는 경우가 있다.
(답) 이럴 경우, 뚜렷하게 사실을 밝혀야만 된다. 티 업한 공의 위치가
문제이다. 공이 룰에서 말하는 구역 안에 놓여 있다면 문제가 안 된다.
만일 구역 밖에서 친다면 2타를 부가 받고 구역 안에서 다시 쳐야 된다.
흔히 있는 예로는 2개의 마커를 이은 앞쪽의 방향에서 약간 앞으로
밀려 나가거나 뒤로 좋은 라이가 없어서 규정된 뒤편 2클럽길이보다
더 뒤로 벗어나는 경우이다. 그러나 판정의 포인트는 어디까지나
공의 위치에 있다. (제11조)
7. 다른 티에서 쳤다면.....
(문) 친선경기나 코스를 잘 모를 경우 백 티와 흰 마크의 프론트 티를
착각하는 예가 있다.
평소 프론트 티에서 사용하는 친선경기 때에는 익숙한 코스라 할지라도
깜박하면 착각할 때가 있다.
스코어가 흡족하게 되어 가는 형편이라도 주변의 상황에 유의하지
하지 않고 섣불리 티 업을 하면 기분을 상하게 된다.
(답) 아무리 멋진 샷일지라도 규정된 팅 그라운드에서 치지 않았다면
낭패를 겪는다. 백 티에서 쳐야 마땅한데 프론트 티에서 치면
그 사이의 거리를 줄인 플레이가 되는 셈이니까 당연히
자기에게 유리한 행동을 저지를 잘못이 된다.
이럴 때는 2 페널티를 물고 규정된 티에서 제 3타 째를 다시 쳐야된다.
첫 번째에 친 티에서의 스트로크는 타수로 계산하지 않아도 괜찮기로
돼있다(제11조)
8. 왜글 때 공이 굴러 떨어 졌다면...
(문) 제 타의 티 업을 하기 위해 스탠스를 취하고 샷의 준비동작으로
왜글을 2 - 3회 하다가 공을 살짝 건드렸다 공이 떨어져 아래로 굴렀음은 물론이다.
이럴 땐 어떻게 처치하는 것이 옳을까?
(답) 이럴 때는 다시 한번 티 업하면 된다. 물론 노패널티. 이미
앞에서 말한 사례도 있듯이 제 1타의 경우에는 아직 "인 플레이의
공"이 아니다. 더구나 "스토로크"의 정의에 있는 "공을 움직이게
하려는 뜻으로 클럽의 앞쪽으로 보낸 동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 11조)
9. 티잉 그라운드에서 헛쳤다....
문) 힘껏 클럽을 휘둘러 제 1타를 쳐낸답시고 샷을 시도했는데
웬걸 클럽헤드가 공을 건드려 보지도 못하고 헛 나갔다.
게다가 휭 하며 바람결에 공이 티 업에서 굴러 떨어졌다.
(답) 이것을 비록 헛쳤더라도 룰에서 말하는 엄연한 스트로크이니까
헤드가 공에 맞지 않았지만 공을 친 것이나 다름없이 간주된다.
그리고 바로 "인 플레이의 공"2)이 되기 때문에 함부로 공을 건드리지
도 못한다.
물론 다시 한번 티 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공이 멎어있는
곳에서 2타 째 플레이를 계속해야 된다. 공이 있는 지점이 티잉
그라운드 위거나, 티잉 그라운드 밑이거나 룰에서는 모두 스루더
그린3)에 멎어 있는 공이 되니까 처지는 똑같다.
10. 공이 티 마커 옆에 떨어 졌다면...
(문) 티 샷을 헛친 것이나 다름없는 탑 미스를 내고 말았다.
그 결과 공이 바로 옆에 있는 티 마커에 바짝 붙어 버렸다.
"어떻게 쳐야 할까?"
이런 경험은 처음이고 별로 지식도 없는 골퍼라면 누구나 어리둥절하게 된다.
백 티에서 쳤는데 프론트 티의 마커에 굴러 붙었다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답) 이런 경우라면 처치가 간단하다.
결론부터 말해서 마커를 빼고, 플레이를 한 후에 다시 원 위치대로 꽂으면 된다.
이미 앞에서 말했듯이 탑 미스 일지라도 공을 치려는 마음으로
클럽을 앞쪽으로 휘둘러 내면 "스트로크"가 된다.
그러면서 이 첫 스트로크에 의해 공은 "인 플레이"가 된 셈이다.
또한 다음타의 방해가 되는 마커는 "움직일 수 있는 장애물"로서 제 1타
후라면 패털티 없이 옆으로 치워도 상관없다.
11. 티잉 그라운드에서 샷 한 공이 OB가 된 듯한데..
(문) 스타트 직후의 홀에서는 충분한 준비 운동이 안된 상태일 때 자칫
OB에다 빠뜨리는 낭패를 자주 당한다. 그것도 바로 앞의 연못이나
뚜렷이 OB로 인정되는 경우면 괜찮지만 OB선이 숲 너머 멀리 있고
친 순간 어디쯤으로 갔는지 짐작이 안 가는 경우가 많다.
OB가 염려가 되자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가서 확인해보니
역시 OB였다.
(답) 이런 식이 아주 서툰 방법이다. 아무래도 염려가 된 다면 "잠정구"를
먼저 쳐두어야 된다(제27조). 그렇게 하면 다시 치기 위해 되돌아가는
시간을 줄일 수 있고 허둥대지 않아도 된다.
"분실구"의 염려일 때도 같다.
만일 잠정구를 친 후에 먼저 공이 발견됐다면 잠정구는 타수로 계산함이
없이 그래도 플레이를 속행할 수 있다.
12. 다른 티에서 치고 OB를 냈다면....
(문) 첫 타를 OB냈고 더구나 규정의 팅 그라운드가 아닌 다른 티에서
쳤다는 것을 알았다.
오너의 경우 이런 일이 어쩌다 생긴다. 먼저 치는 플레이어가 있으면
팅 그라운드를 틀릴 일이 없지만 좋은 컨디션으로 계속 플레이중일 때는
능숙하게 딴 플레이어보다 먼저 가서 티 업을 하고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먼저 치는 경우가 있다.
(답) 이미 말한 것처럼, 이런 경우에는 적당한 티로 되돌아와서 2스트로크의
패널피를 물고 3타 째로 계산해 다시 치면 된다. OB가 난 타수는 계산할
필요가 없다. 티를 틀린 것에만 주는 패널티 뿐이다. 만일 라운드 종료
시까지 정정하지 않는다면 "실격"이 된다. (제11조)
OB가 패널티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정당한 티에서 쳤을 때만 한한다.
13. 코스에서 클럽을 빌리려고 하는데....
(문) 드라이버가 잘 되지 않는다. 3번 우드로 바꿔쳤는데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상대방이 쓰지 않는 클럽을 빌리려고 하는데.....
(답) 88년 개정 룰에서는 채를 보충 또는 대체할 경우 코스에서 경기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빌릴 수 있다고 되어 있지만 새로 개정된 92년 룰에서는
코스에서 클럽을 빌릴 수 없도록 되어 있다(제4조 4항)
14. OB선을 넘어 세이프?
(문) 길죽한 숏 홀의 티 샷을 했다. 그런데 그 공은 OB구역의 동산 위를
지나서 더 날아갔는데 동산너머 기슭에는 이웃 홀의 OB선이 있었다.
공은 동산을 넘고 OB선도 넘어서 이웃 홀의 페어웨이까지 나간 것이다.
"OB선에 들어가지 않았으니까 세이프구먼"
"아니야, 일단은 OB선에 들어간 것이니까 그게 아니야"
동반 플레이어와의 사이에 해석이 엇갈리기만 한다.
(답) 이것은 결국 OB에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 봐도 된다. 즉 플레이어
자신이 판단한대로 세이프이다. 이런 경우처럼 홀 과 홀 사이에
있는 산이나 절벽이나 골짜기 부분을 OB구역으로 지정한 코스가 있다.
하지만 지정한 구역만이 OB, 즉 "코스 밖"이고 그곳을 통과하면
"코스 안"의 구역이 되니까 세이프가 맞다
15. 깊은 러프에 공이 박혀 찾기 힘들 경우....
(문) 티 샷이 엉뚱하게 큰 슬라이스 나면서 깊은 러프로 박히고 말았다.
캐디나 동반 경기자가 함께 거들며 찾았지만 쉽사리 눈에 띄지 않았다.
"틀림없는 로스트 볼이구나. 잠정구를 쳐두자"고 하니까 옆 사람도 그 말에
동의했다.
(답) 물론 이런 염려가 있을 때에는 공을 찾기 전에 "잠정구"를 쳐두는 것이 좋다.
그리고 공을 찾기 시작해서 5분이 지나면 로스트볼 "분실구"가 된다.
"분실구"는 1패널티를 물고 원 위치에서 다시 쳐야 되니까 "잠정구"를 쳐두면
되돌아와서 다시 친다는 시간 절약과 함께 허둥지둥 진땀을 빼지 않아도 된다
(제27조)
16. 스윙 순간에 다른 공이 굴러왔다
(문) 티 샷을 하려고 스윙을 잡는 순간이었다.
동반 경기자가 떨어트린 공이 조르르 굴러왔다.
스윙을 멈출 수가 없어서 멈칫하다가 탑 미스를 내고 말았다.
이럴 때 다시 칠 수 없는지?
(답) 아쉽게도 다시 칠 수가 없다.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동반 경기자가 자칫
들고 있던 클럽을 떨어뜨리고 울린 소리나 코스근처에서 나는 철도나
비행장의 소음도 똑 같다. 물론 갤러리가 갑자기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거나
플레이의 방해가 될 때도 있다.
어는 경우라도 그런 방해들이 원인이 되어 미스 샷이 날지라도 그 공은 인플레이
공이 된다. 따라서 "있는 그대로의 상태"(제13조)에서 차타를 치든가,
"언플레이어볼"을 선언(제28조) 할 수밖에 없다
17. 같은 거리의 공을 먼저 쳤다면....
(문) 티 샷 이후부터는 "원구선타"가 원칙인데 또 한 사람의 플레이어가 친 공도
같은 정도의 거리로 날아갔다. 이때 현명하게 순서를 정하는 방법이 있을 텐데..
(답) 제 2타부터는 핀에서 먼 공을 차례로 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이런 경우처럼 거의 같은 거리로 나란히 공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옳은지.
바람직하기로는 가위바위보나 제비뽑기로 정해야 된다(제10조). 다만 타순은
틀렸더라도 스트로크 플레이 띠는 벌 없이 공이 멎어있는 곳에서 플레이를 속행
하기로 돼 있다.
18. 어드레스 때 공을 건드렸다면...
(문) 페어웨이에서 어드레스를 잡는 순간, 스윙 전인데도 클럽헤드가 공에 닿았다.
그 결과 약간이지만 흔들렸다.
"이봐, 공이 움직였어 1패널티야"
먼발치에서 지켜보던 동반 경기자가 소리쳤다.
(답) 룰에서 문제가 되는 점은 "공이 움직였다"는 표현인데 실제의 상황도 틀림없이
그런지 아닌지 하는 것이다. 룰에서 말하는 "움직였다"는 "정지한 공이 딴 위치로
이동했다"고 할 때 비로소 "움직였다"는 것이 된다.
따라서 클럽이 공에 닿아 공이 흔들리기만 하고 "위치"의 이동이 아니라면 룰로 봐서
움직인 것이 안되고 벌타는 없다(제18조)
그러나 티 이외의 어드레스를 잘못해서 공을 건드리면 1타가 붙고 88년 개정에 의해
"그대로의 위치"가 아니고 "원 위치"로 리플레이스 하여 차타가 된다.
19. 드롭 후에 분실구가 발견됐다..
(문) 페어웨이 제 2타를 쳤고 공이 핀을 겨냥하기 좋은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런데 다가 가 보니 공이 눈에 안 뛴다.
"공 찾기"는 아직 5분이 안 되어서 원 위치로 다시 뛰어가서 다른 공을 드롭했다.
그 순간 "이봐요! 여기 있어요!"하며 전방에서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다시 허겁지겁
어프로치 위치로 뛰어 나와서는 플레이를 속행했다.
그런데 그 처치법은 옳은 것인지?
(답) 그것은 한마디로 위반이다. 일단 "드롭"하면 "인플레이의 공"이 되고(제20조)
"처음의 공"이 분실구가 된다(제27조)고 규정돼 있어서 드롭한 공으로 플레이하지
않으면 "분실"에 의한 벌타로 끝나지 않고 다시 2타 부과를 물게 된다.
20. 남의 공을 내 것으로 알고 쳤다....
(문) 러프 숲도 아닌데 부주의로 남의 공을 자기 공으로 보고 쳤다.
분명 공 번호가 맞는데.....
그때 "그것은 내 공인데..." 하면서 이웃 페어웨이에서 뛰어온 어느 플레이어의
주장을 들었다.
(답) 해저드의 경우를 제외하고, 남의 공을 쳤다면 "오구"의 룰에 따라 2패널티를 물고
자기 공으로 플레이해야 된다. 이럴 때 오구에 들인 타구는 스코어에 넣지 않아도
된다. 공의 번호만 기억해서는 충분하지가 않다.
자기 팀의 플레이어가 서로 공의 번호를 틀리게 하더라도 이웃 홀에서 쳐보낸 공이
공교롭게 똑같은 번호의 공이라는 예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공 임자는 벌 없이 샷한 지점으로 리플레이스를 하고 플레이를 속해해야 된다
21. 분명히 페어웨이로 날아갔는데....
(문) 페어웨이 한가운데로 날아간 것이 분명한데 다가가 보니 공이 안 보인다.
"이거 무슨 귀신에 홀린 꼴이구먼"
이를 본 옆의 플레이어도 민망했던지
"할 수 없으니 그쯤에서 쳐두는 것이 좋겠어"하며 거들었다.
(답) 물론 이런 사례 역시 연습라운드가 아니면 몰지각한 룰 위반이 된다.
분명히 "분실구"이니까 5분간 찾아봐서 눈에 띄지 않는다면 샷을 한
원위치에 되돌아가서 1타를 부가하고 다시 칠 수밖에 없다.
티에서는 티 업, 그 외에 장소라면 드롭 해야 된다(제27조)
이런 경우, 누구나 나이스 샷이 된 줄 믿고 전진하기 때문에
잠정구를 생각지도 않는다. 후속의 플레이어는 그런 예도 생긴다는
것을 알고 상을 찌푸릴 것이 아니라 분실구를 낸 플레이어가 부담 없이
다시 치도록 배려해 주어야만 한다. 요는 5분간에 걸쳐 찾는 경우라면
반대로 후속팀을 통과시켜야 한다.
22. 나무에 부딪친 공이 또 자기를 맞혔다면....
(문) 페어웨이 한가운데에 있는 한 그루의 소나무를 세컨드 샷으로 부딪쳤을 뿐
아니라 그 공이 튕겨 자기에게 맞았다.
"이봐요 그 공은 최종으로 멈춘 곳에서 쳐야 옳아요. 다시 치는게 아니야.
게다가 2벌타를 물어야죠..." 하면서 친구가 자상하게 가르쳐 주었다.
(답) 옳은 말이다. 그 공은 다시 치는 것이 아니라 공이 멎은 곳에서 2타 부가하고
플레이를 속행한다. 자기 몸에 맞는 경우만이 아니라 자기 캐디, 클럽,
자기 "휴대품"에 맞아도 마찬가지이다 (제19조)
따라서 샷 할 때는 캐디가 자기 위치에서 멀리 가는 것을 기다렸다가
치도록 해야 된다. 또한 자기 물건을 카트에다 넣어 두던가, 캐디에게
들고 있도록 해놓고 플레이하는 것이 신중한 방법이다
23. 공이 옆 플레이어에게 맞았다면....
(문) 나무에 맞고 튕긴 공이 자기가 아닌 옆 플레이어에 맞았다.
생각지도 않았던 미스가 난 것이다.
별 수 없이 2 패널티를 물어야 돼 하며 친구가 한마디했지만
석연치가 않았다.
"글세 옳은 조치가 아닌 것 같은데...."
(답) 남에게 맞은 공이 "러브 오드 더 그린"4)이고 벌타는 없다.
그리고 공이 멎은 위치에서 그대로 플레이하면 된다.
즉 남을 맞힌 경우에는 흔히 우연성으로 간주할 때가 많다.
그런데 자기를 맞히면 2타의 벌이 부과되는데 그 이유는 조금이라도
거리를 손해 안 보기 위해 튕겨진 공을 일부러 막으려는 속셈을 가졌
는지도 모른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무튼 어쨌거나 "자기에게 유리하게 안돼는 조치"가 룰의 원칙이다
함부러 불펌 하지 마세요~~
성에 대하여~~
성, 사랑, 결혼
일반적으로는 사적인 일이고 남자와 여자에 대한 시각이 서로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다르다.
성, 사랑, 결혼의 역사
서구 10세기 이전에는 귀족들에게는 혈통을 그리고 일반 민중들에게는 노동력 생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는 출산과 연결하여 성관계를 가지는 것이다. 이것은 결혼과 사랑은 일치하는 것이 아니며 동맹과 신분유지 등 목적을 위한 것으로 경제적 교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귀족들에게서의 사랑은 불륜의 형식의 사랑으로 격정적이고 짧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중세 중반기에 들어서 낭만적 사랑의 개념이 싹트기 시작하여 연애가 생겨나기 시작하였다.하지만 남성중심적이어서 여성의 성문화는 엄격했다. 이는 독일의 작품 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의 여성을 통해 그 당시 중세 중후반의 시대상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여성은 엄격하고 남성은 상대적으로 성규범이 약해서 이중적인 성규범을 나타내었다. 신분 꼐급이 동요된 시기의 근대는 경제력과 상관없이 개인이 배우자를 찾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사랑과 결혼이 일치하며 개인과 개인간의 결합을 강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혼전관계도 허용이 되었는 데 이는 독일의 작품 ‘한밤의 북소리’에서 나타낸다. 1960년대 이후 혼전관계가 결혼에 염두에 두는게 아니라 단지 즐기기 위해 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이는 성과 사랑과 결혼은 개별적이며 모든연결고리가 분리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이혼률은 상승하고 동거율이 상승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함에 여성의 입장은 여자는 더 이상 남성의 의지대로 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합의적 사랑’ 으로서 운명, 합의를 통한 깨어짐이 없는 낭만이 아니라 각장도등한 입장에서 합의를 통한 사랑을 한다.
한국에서는 조선시대 이전에는 조선시대와 다르게 성에 대해 자유로웠다. 그리고 사사로운 남녀간의 사랑이 있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이후에는 부계혈통 중시하는 유교사상과 가문과 가문의 결합을 통한 정략결혼, 사랑 (낭만) 을 하는 것을 금지하였고 정조를 중시여겼다. 이러한 정조를 중시여기는 것은 역사적으로 볼때 사회가 혼란스러울수록 정조를 중시하였다는 점에서 그 당시의 상황을 알 수가 있다. 근대에 이르러 신분이 타파되고 낭만적 사랑이 서서히 생기기 시작했는 데 다만 이러한 것은 사람의 의식만이 바뀌었다는 것이지 아직까지 여자들의 순결을 강조 했고 파혼에 대한 짐들이 여성에게 돌아가는 것처럼 남, 녀에 있어서 아직까지는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에 서구의 1960년대의 성에 대한 사상들이 급격히 늘어나게 되고 쾌락 중심 성문화가 발달하며 이중적 문화 발달로 인해 혼전 문제 등으로 자유롭지만 그이후 밝혀지면 파문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랑
사랑은 친밀감과 열정 그리고 책임감이 조화를 이루어야 완벽한 사랑이 이루어진다. 친밀감은 서로가 느끼는 호감을 말하며 열정은 육체적 욕망을 뜻한다. 그리고 책임감은 순간의 사랑을 막아주는 의무로써 지속적 역할을 한다.
여성학의 사회적 접근
사회적인 맥랑에 따라 구성되고 형성되기도 한다. 가부장제 하에서 여성, 남성 경험이 다르게 나타난다. 여성의 남성에 대한 종속은 낭만적 사랑에서 알 수 있다. 여기에서의 사랑의 종착지는 결혼이다 그런데 이는 제도에 포함된 사랑이다. 즉 권력의 차이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즉각적인 희열을 요구하는데 성혁명기에 살고 있는 지금도 낭만적 사랑을 꿈꾼다. 따라서 이는 비판해야된다. 근대는 감정적 유대를 확산시킬 폭이 넓어 사랑에 대한 집착이 없었지만 현대에는 인간 유대관계가 극히 단절되어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집착 사랑이 높다. 따라서 아직도 여전히 여성에게는 남성의 경제성 기대가 대부분이며 남성은 여성의 외모와 모성애를 기대한다. 이는 성별역할 분업이 낭만적 사랑에 있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해결책으로는 개인의 자율성과 평등에 기반한 친밀감확대와 자아발전을 최우선시 해야 한다. 이러한 것은 자신에게 필요한 사랑을 찾는 것으로 말할수 있다. 그리고 솔직함에 대한 만족과 상호작용필요성 그리고 권력 균형 균등 노력과 섹스는 의무가 아닌 선택이라는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 자본주의에서 가장 즁요한 것은 경제력 즉 여성보다 남성이 주도하고 따라서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여성의 힘이 약한 상태에서 이혼후 위자료문제와 사회에서 받아주지않는 문제가 나타나게 되는 모습을 나타내 준다. 이러한 것은 낭만적 사랑에 비추어 볼때 여성은 사랑에 집착하는 경향과 남성은 자신이 성공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 즉 인생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서로의 의식차이에서 빚어진다고 할 수 있다.
성, 사랑, 결혼과 관계된 현실적 문제
성에대한 부정적 시각과 금기가 형성된다. 대개 정신적인 것에 반한다는 생각 즉 저급하게 취급하는 데 즉 남이야기는 아는데 자신의 이야기는 못하는 성역할 고정관념과 편견에 휩싸이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것은 유교문화에서 비롯되어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해진 것이다. 그리고 성에대한 이중 기준에 대한 문제가 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남성은 성욕이 강하고 여성은 성욕이 약하다는 생각으로 즉 성에 따라 체제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는 남성은 성규범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남성중심의 성관계에 대해 정당화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성의 상품화로 자본주의 사회의 성의 부정적이고 은밀하다는 것을 이용한다. 왜냐하면 희소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의 상품화는 왜곡된 성을 유포하는 데 기여를 하며 이것은 계속해서 악순환이 된다. 자본주의는 성의 상품화와 성에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이용하여 성에대한 ‘은폐’를 유발하고 상품화한다. 그리고 통제수단으로써의 성으로 가정 폭력은 성폭력과 병행시한다. 이러한 것은 사실 남성이 여성에게 여성이 남성에게 둘다 이루어 지는 것이다.
가족
평생 동안 영향을 지속을 주거나 받게하고 편안하게 쉭 수 있고 사생활의 공간이며 감정적 유대의 공동체 역할을 한다. 그리고 제도적으로는 개인으로 구성된 최초의 사회집단이고 어느 나라를 전 세계적으로 퍼져있는 제도이다. 가족의 문제는 개인적의 문제가 대다수이다. 가족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가족은 일상생활에서 판단하는 기준임과 동시에 실질적으로 행동지시 및 규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정상가족과 비정상가족을 나누는 통념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는 나이가 들면 결혼해야한다는 통념을 만들며 보편적이고 바람직한 제도로써 가족이 형성되어진다. 그리고 비정상 가족일 경우 규제를 당한다. 또한 가족은 가구와 가족으로 구분되어진다. 가구는 경제 공동체를 의미하며 가족은 의미공동체로써 의미되어진다.
이러한 가족은 정상가족에 대한 신화를 낳는다. 그리고 성별권력관계 즉 경제적인 낭만화를 만든다. 이는 정해져 있는 사랑으로 문화적풍토와 속해있는 사회 체제, 성별, 가치관, 계급이 서로 비슷해서 결합이 된다. 또한 공동체로서의 신화를 통해 소비를 평등한 자원 배분으로서 보여지지만 이러한 것은 사실 허상에 불과하다. 예를들어 가정주부를 기준으로 한다면 먹는거, 입는거, 쓰는 것은 아버지, 자식 기준으로 주부는 남편에게 위임되는 것으로 나타내어진다. 따라서 여성 자신이 사용 즉 소비하기에는 부담을 주며 이 것은 이혼 할때 여성이 불리하게 작용되고 가사노동은 직업에서 평가 절하가 되는 부작용을 낳는다.
한국 가족의 변화
1950년대 이전 만 하더라도 대가족에서 1960년대 이후 핵가족이 증가하였다. 1980년대 가족계획정책으로 가구당 평균인구가 줄어들게 되었다. 1997년 IMF 이후 급격히 변화하여 가구는 대형화에서 소형화로 바뀌었다. 2000년대 이후 맞벌이 가족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여성의 취업률은 미혼 여성 취업률은 낮으나 상대적으로 기혼여성 취업률은 높다. 하지만 기혼여성의 경우 아이가 없는 여성은 기혼여성 전체의 취업률에 78%이나 1~5살 아이 보유 여성은 27.3%로 떨어지며 다시 기혼 여성의 취업률이 상승하는데 이를 M자 형 취업률 곡선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시 취업률이 상승할때의 기혼 여성의 경우 예전 만큼의 지위를 잃어버린 상태고 따라서 다단계 또는 단판치기 회사에 취업하며 이는 질적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가족의 형태가 다양화 되어 독신가구가 증가하게 되었다. 2000년 독거노인 포함하여 25% 를 나타내는데 이혼도 이러한 수치에 한 몫을 했다. 그리고 한부모 가족과 재혼가족이 나타내어진다.
가족의 문제점
가사 노동은 무보수 노동이고 노동에 대한 기준이 없으며 개인의 어떤 사생활에 의존하는 노동이다. 그리고 제도적으로나 법적에서의 여성의 지위는 낮다.
가사노동의 평가에 있어서 가사노동은 재생산과 관련된 노동 즉 직장생활의 노동자가 다시 직장에 갈수 있게 끔해주는 노동이다. 그리고 노동자체의 의미가 확대 되어서 제테크, 식단짜기, 아이공부, 숙제검사, 간식 챙기기, 세금납부, 반상회를 포함한다. 이러한 가사노동은 집안 관리와 가족관리를 하는데 이러한 노동은 돈을 벌어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치가 절하된다. 이로 인해 남녀 평등의 일이 아닌 대부분이 여성인데 이는 여성의 사회생활의 걸림돌이 된다. 하지만 가사 노동은 일차적으로 중요시가 되며 가치비용만하더라도 대졸여성은 198만원, 고졸여성은 90만원을 수치로서 나타낸다.
가사노동의 실태는 다른 직업과 비교해서 상당히 많은 노동시간을 소요한다. 주부의 경우 8~12시간이며 서구의 경우에는 6~8시간, 밎벌이의 아내의 경우 3시간 18분이며 남편의 경우는 32분 소요한다. 따라서 한국의 여성의 경우 남성에 비해 가사노동을 많이 한다. 그리고 예전과 비교해서 세탁기 발명이후 가사노동이 편리하게 된듯보이지만 옷세탁이 잦아지고 남, 녀의 일에서 혼자 하는 일로 바뀌게 되며 예전의 힘든 세탁경우에는 힘들기 때문에 때가 조금있어도 봐줬지만 지금은 무조건 청결해야한다는 의식의 변함에 따라 오히려 가삳노동시간이 증가하게 되었다. 따라서 ‘간편하다’ 라는 수식어를 사용하여 여성혼자 할 수 있게 끔하여 여성이 가사노동 전담에 기여하고 인식하게 하였다.
자녀에 대한 양육문제에 있어서 현대에도 기혼여성의 취업률이 70%이지만 여전히 양육을 여성에게만 전달한다. 이는 여성이 아이를 낳아서 키워줄수있는 제도가 있다면 해결 가능하겠다. 하지만 양육하는 시설은 현재 많으나 부모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곳이 마땅이 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친정어머니에게 맟기는 경우가 나타나는데 이는 또다른 여성에게 맡겨지는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임신한 여자는 회사생활에서 불리하게 작용을 한다.
가정폭력은 가정내에서 발생하는 폭력이다. 전통적 가치관 속에서는 가정폭력이 잘 드러나지 않아 최근에 가정폭력이 드러났다. 이러한 유형으로는 아내학대와 남편학대같은 폭력, 유희, 공포, 모욕이 있고 노인학대와 아동학대가 있다. 이러한 가정폭력의 특징은 학력, 소득 불문하고 나타나며 성격이상과는 무관하게 나타난다, 아직까지는 통념에 의해서는 가정폭력은 사적인 일에 취급되는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리고 가정폭력은 대부분 상습적이고 습관적인 특징을 지닌다.
따라서 가족은 사회1차적 집단으로써 보수적인 공간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는 가정이 변하면 사회가 변함을 알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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