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사진은 http://phr1215.textcube.com/107 (sehen sie bitte~~ Click please~~)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동티모르의 탄생을 읽고)
박형락
학교 도서관에 비치된 이 책의 표지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빨간색 표지 또 하나는 흰색 표지로 되어있었다. 나는 빨강표지를 선택 했는 데 책을 펼쳐보니 다름 아닌 동티모르 국기 디자인이었다. 붉은 색의 국기는 마치 붉은 피 또는 정열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인도네시아 국가의 지도 맨 끝에 손 방망이처럼 표시되어 있는 동티모르는 마치 피바다 속의 빛처럼 표현되어진 거 같았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작가가 동티모르에 있었던 일을 수기로 그대로 작성했다. 자신이 느낀 그대로 유엔 선관위원으로 있으면서 동티모르에 있었던 주요 사건들을 사진처럼 펼쳐 놓았다. 사적인 이야기를 많이 표현할 정도로 동티모르에 있었던 일들과 자신의 생각이 마치 현장에서 썼다고 독자들에게 말하려고 하는 듯 하다. 궁극적으로 이 책이 말하고 싶은 것은 포르투갈, 인도네시아의 지배를 받았던 동티모르가 수많은 시련을 겪고 독립하는 과정을 우리의 역사에 비추어 반성한 거 같았다. 식민 통치를 벗어나기 위해 피를 보며 투쟁을 하는 사람, 통치국에 빌붙어 저항하는 같은 동족들을 괴롭거나 이익을 챙기는 자, 독립 후 생기는 사후문제 처리방식과 시민들의 의식수준, 또 다른 외세의 난입 등 동티모르의 독립과정은 우리와 유사하면서도 다르게 보여진다.
수준 높은 교양인이라도 파우스트는 상당히 읽기가 힘들다. 따라서 전공자라도 읽기를 꺼려하는 작품이 파우스트다. 엄청난 분량의 희곡으로 독일철학 뿐 아니라 그리스 철학은 기본이고 세익스피어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생각은 허공에 삽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괴테가 어린시절 접한 파우스트 이야기는 그가 영국문예사조인 빅토리아 왕조 중기까지 무려 82세 나이 까지 걸쳐 만들어 자신 생애 철학을 모두 담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 저자가 바쁜 와중에 이 책을 완독하고 해설서를 읽었다는 것은 대단하면서도 생각보다 여가시간이 많았음을 짐작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저자가 파우스트의 끝부분 일반적 해석과는 다르게 해석한 부분이 눈에 띄었다. 파우스트를 해피 엔딩이 아니라 베드엔딩으로 본 듯 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항상 이상을 향해 달려가는데 결국 방황만 하기 때문이다. 주인공 파우스트는 결국 자신의 이상을 보지 못하고 죽게 된다. 이상이 설령 실현되어도 그는 마음의 눈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고 신은 말한다. 그렇다. 우리의 삶, 우리의 인생, 우리 한국 그리고 동티모르는 이상을 향해 다가서려 하지만 결국 이상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방황과 노력은 결국 뜻밖이지만 천국으로 가는 길을 연다. 작품에 나와있는 Gretchen은 여성으로 파우스트의 애인으로 그를 구원하는 여성상을 상징한다. 작가는 파우스트를 통해 바로 동티모르 그리고 한국을 함께 보며 노력과 방황 그리고 구원하는 여성을 본 것이다.
동티모르인의 수준 높은 의식은 분명 우리에게 많은 부분들을 생각해준다. 자치파의 행동에 대한 용서와 인도네시아 대통령 초청은 세계 무대에서의 화해와 용서를 여실히 보여 줬다. 그리고 여성 의식 수준이 굉장히 높았다. 목적이 없고 이유 없이 이론적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실천적이고 행동적인 페미니스트는 앞으로 동티모르에 있을 남녀 평등 실천에 긍정적인 작용을 할 것이다. 독립을 위해 노력한 위인들에 대한 대우도 우리와는 다르게 매우 빠르게 우대하고 생각하는 동티모르인들을 보았다. 정말 겉으로만 보는 물질적 의식 수준에서는 분명 우리가 뛰어 나겠지만 내면 의식 수준은 우리를 넘보고 있는 것이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작은 나라에서 여러나라에게 받은 도움과 수많은 열강들이 노리고 있는 등뒤의 칼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이미 이 책에서 수많은 이방인들이 많은 시설에 투자를 하고 이익을 챙기고 있는 모습을 띄고 있다. 잘못하면 동티모르의 발전에 대한 이익이 가진자들과 열강의 외국인들 손으로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자치파의 힘을 얻어 많은 혜택을 누리던 동티모르 인들이 다른 나라로 피하거나 현지에 거주하면서 부를 얻고 있다는 문제는 분명 화해와 용서 속에 숨겨진 이면이다. 또한 아직까지 물질적인 혜택을 받지 못해 생기는 문제점은 그들에게 많은 숙제로 남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항상 노력하고 방황을 하면서 이상은 아니더라도 천국에는 도달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메피스토의 물질적이고 쾌락적인 도움이 아니라 스스로 주체하고 깨닫고 실천 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한 것이다.
한국은 독립 후 분단되고 서로가 싸웠다.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많은 나라들이 도움을 주었다. 가난을 극복하고 지금처럼 세계경제시장에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세계의 도움 속에 수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까지 열심히 노력하여 경제기적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부작용이 드러나 기초학문실패로 인한 대외 의존도 상승과 물질적 성장에 비해 정신적 성장이 뒤받침 되지 못한 향락주의와 디스토피아적 세계관 그리고 순환론, 빈부격차와 모순된 국민의 민주주의 의식을 비롯한 무지가 나타났다. 좀 더 그들에게 스스로가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고 성장할 수 있도록 실천을 통해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보고 도움을 주어야한다. 순간적인 도움보다는 지속적이고 발전가능 한 자세로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물질적으로 도와주려고 가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주러 간다. 그렇게 한다면 그들이 성장하면서 진정으로 도와준 우리들에게 보답과 감사를 표할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하고 멀리보는 작은 외교가 아닐까 생각한다.
p.s 불펌하지마시고 의견은 댓글 비밀로 달아주세요~~
p.s 위의 사진과 내용은 다를 수 있습니다. 위의 리뷰는 동티모르 가기전 글이고 사진은 동티모르에서 직접 찍은 사진입니다.
p.s 관련 자료를 원하시면.. 경북대학교 도서관 -> '동티모르' 검색하시면 소중한 자료가 비치되어 있으니 확인 바랍니다.
2009년 8월 18일 화요일
세계의 빈곤, 그 부정의 변증법
*관련사진은... http://phr1215.textcube.com/106
세계의 빈곤, 그 부정의 변증법
('세계에서 빈곤을 없애는 30가지 방법'을 읽고)
박형락
인간은 누구나 더 나은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 삶이란, 진동과 진동이 마주하는 상호관계 속에서 생기는 따스한 열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인간은 더 나은 이상을 향해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한다. 큰 틀로 봤을 때 자연과 소통하려고 하였고 자연과 인간 사이의 소통에 대해 중간적 입장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신화를 통해 신과 인간의 관계를 구성하기도 하였고 심지어 이러한 구성이 신을 대신한 인간과 인간의 관계로 변형해 놓기도 했다. 인간의 발전은 초창기 모계사회를 중심으로 한 평등한 부족사회에서 사유재산이 생겨났다. 그리고 사유재산을 통한 빈부가 생겨나고 이에 따른 개인과 개인의 대립이 생겨났다. 시간이 흘러가면 갈수록 빈부격차가 커지게 되면서 사유재산이 큰 사람은 작은 사람을 잠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큰 사람을 중심으로 큰 세력이 형성하게 되었다. 점점 큰 세력과 큰 세력이 서로 잠식하기 위해 대립을 할 것이다. 서로의 대립에서 승리한 쪽은 처음에는 난폭하게 죽음을 준다고 하더라고 경제적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합리하다. 따라서 생겨난 것이 노예제도다. 노예제도는 굉장히 그들의 입장에서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승리를 한 큰 세력은 하나의 국가로 존재한다. 계급으로 나뉜 탄탄한 중세시대의 모델이기도 하다. 그런데 하층민 사이에서 의문을 품게 된다. 같은 인간이 서로 다른 삶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하게 된 것이다. 신과 인간의 관계 즉 신화라는 도구적 장치가 계몽을 통해 무너지지는 않지만, 이러한 신화는 관념 속에 서서히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문예사조에서 일컫는 계몽주의는 프랑스 혁명을 몰고 가게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뒤엎지는 못했다. 신화라는 도구적 장치는 여전히 우리에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계몽이 낳은 과학 만능은 다시금 도구로서 우리를 존재케 하기 때문이다. 낭만, 상상, 환상을 부여하기에는 우리에게 너무 큰 거리감이 생기게 된다. '인간의 삶'은 항상 발전할 것이라는 인간의 믿음은, 상부에서의 분위기 조작으로 튼튼히 다져간다. 문화 비평이 없는 세상, 인문학을 멀리하는 세상이 오면서 이러한 믿음은 커져간다. 그런데 아직까지 세상은 불공평하게 우리를 이끈다. 인간은 도구적 존재가 된지 이미 오래이며 너무 오래다 보니 우리 스스로 느끼지도 못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부정되고 부정되어야만 하는 모순의 골속에서 썩어가고 있는 데도 말이다.
이 책에서 나에게 낯익은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바로 공정무역이다. 노동력을 착취하여 싼값으로 원재료를 판매하기 때문에 우리가 값싸게 먹을 수 있다. 물론 값싼 초콜렛은 진짜 카카오라고 하기 힘들 정도로 만들어진 가공 초콜렛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정당하게 노동력에 대한 값을 주고 구매하여 소비자에게 양심적으로 파는 공정무역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세계는 이렇게 많은 노약자들이 공정무역의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웰빙 열풍이 일어나면서 유기농 채소와 함께 공정무역이 알려졌다고 한다. 따라서 아직까지는 공정무역에 대한 정확한 소비자 인식이 부족하다. 대학교의 경우 이화여대와 경북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소개되었다. 당시 반응은 상당히 좋았는데 다만 걸림돌은 가격이었다. 정당하게 구매하고 판매를 하다 보니 가격이 시중가격에 비해 무척이나 비쌌다. 학교 축제기간에 행사 제품이어서 학생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으나 정작 소비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갈수 없는 물건이 아닌가 하고 생각 되어졌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책은 국외의 빈곤자들에 대한 연민의 시각으로 국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나는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해결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힘든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비싼 가격으로 구매를 하면 자연히 소비자 물가가 올라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서민층의 허리는 안 그래도 휘어져있는데 확인 사살하는 거랑 다를 바 없다. 대기업 입장에서도 분명 질이 좋고 값싼 초콜렛을 생산하고 거기에 공정무역이라면 더욱이 회사 이미지 상승이라는 시너지 효과까지 얻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쳐 있었기 때문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사줘야 더욱 큰 이익이니까 말이다. 따라서 생협이나 NGO 같이 소규모가 연합을 해서 공정무역을 하는 것에 그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을 자본주의로 향하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자본주의의 뒤엎지 않는 한 완전한 해결을 불가능 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될 것이고 이는 자본주의 비난의 선봉 또는 초석이 되는 발판을 마련하는 구실이 되는 셈이다.
이 책에서 해결책을 주장하는데 있어서 걸림돌은 국가와 대기업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국가와 대기업간의 밀착관계는 시대의 흐름과 맞물린다. 국가의 경우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빌려준 차관은 국가 이익을 넘어서 착취의 수단일 뿐이다. 이젠 국가마저도 도구화 되어버린 세상이 되었다. 또한 대기업은 세금을 피하기 위해 다국적 기업으로 변신한다. 단순히 세계 시장을 넓히는 목적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세금 회피가 있었다. 다국적 기업과 국가의 만남으로 가난한 나라는 착취의 수단이 되었다. 착취의 방법은 날카로웠다. 원조 또는 구호라는 이유로 필요한 물질을 빌려주거나 무상으로 기부를 한다. 분명 가난한 국가 입장에서는 도움을 받으니 좋겠지만 실제는 그러하지 못하다는 것에 주목해야 했다. 도움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자립할 수 있는 능력과 기반이 떨어지게 된다. 물질 문명이 발달함과 동시에 인간의 정신이 따라 와야하는 데 그러하지 못하다 보니 인간의 정신은 난민이 되어버린 것이다. 자립 할 수 없는 국가는 결국 선진국가 또는 대기업에 의존하게 되고 국민의 희생을 요구하게 된다. 사실상 19세기말의 식민지 상황이나 다를바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나는 또한 이러한 부도덕을 감수 하면서 까지 상생하는 것이 아닌 이용, 착취의 길을 가게된 국가의 모습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이 책에 언급된 일본이라는 나라는 부족한 자원에 골머리를 앓았다. 그 뿐만 아니라 일본의 경제는 버블경제를 겪은 상황이다. 자원이 줄어 들게되고 국민이 요구하는 경제 성장률을 따라가려면 국가적 차원에서 소위 말해 돈벌이 그리고 자원 확보가 절실했던 것이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다시 국민에게 돌아 갈수 밖에 없는 역사적 사실과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채 원점으로 돌아 갈 수 밖에 없다.
궁극적인 해결책은 실천, 행동이었다. 행동의 변화는 국가와 대기업도 어쩔 수 없이 변화하기 마련이다. 이 책은 행동의 변화를 위해 실천을 강조했다. 사람들이 의문시하고 의아해 하는 일을 서슴지 않고 실천한다면 얼마나 우리들에게도 그들을 도움으로써 어떠한 것을 얻어갈 수 있는지를 절실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면 논점이 흐려질 수 있으나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인간의 실천과 행동의 깨달음은 무지에서 벗어나 계몽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계몽은 신화를 벗어나 체험을 통해 느껴야 하며 자신이 눈앞에 당면한 문제를 소외적인 관점에서 비판을 하지 않는 이상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감정 이입이 되고 만다. 따라서 실천과 행동을 위해 자신이 그 무대의 등장인물이 되어 연극을 하는 것이다. 관객도 없고 조명이나 무대장치 마저 없다. 단순히 연극할 줄 모르는 연기하는 자들만이 존재한다. 그들은 연기를 하면서 서서히 연극 속의 등장인물을 비판하기 시작한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참여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실천 해야 하고 행동 해야 하는 지를 스스로 깨닫기를 원하고 있다. 아이들이 노숙자의 체험을 통해 노숙자의 감정을 누군가의 의도를 통한 감정이입에서 벗어나 스스로 비판하고 진실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물질이 아니더라도 빈곤 국가가 원하는 꿈을 교류를 통해 알아내고 자립할 수 있도록 하여 서로가 사생하는 삶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서술되어 있다.
물질이 무조건 발달한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우리 현실에 절실하게 다가 오고 있다. 이 책에서 대기업과 선진 국가들의 착취로 인해 피해를 받는 주민들의 말들 중 자신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자기 자신들만의 행복한 꿈을 향해 달리는 것이었다. 이미 대학생들에게 뿌리깊게 인식되어진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은 어쩌면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 서로가 상생의 길을 찾아 행복이 가득한 진정한 세계를 찾기 위해 허우적 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들의 조그마한 실천부터 생각의 변화 그리고 행동의 변화에 이어 참여까지 우리가 해야 할 해결책은 이제 과제가 되어버렸다. 이번 동티모르 해외 봉사는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나 자신이 아니라 서로의 팀워크와 함께 현지인들을 이해하고 도와주면서 그들이 원하는 행복을 찾아 주고 우리들이 원하는 희망을 전해주면서 서로가 웃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무조건 적인 도움이 아니라 상대방의 문화를 인정하고 그들만의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주면 훗날 역사에서도 또 다른 비판이 아닌 진정한 합일의 세상이 오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이 든다.
p.s 불펌하지마시고 의견은 댓글 부탁해요~~ (동티모르가기전 작성한 글로 사진은 직접 찍었으나 내용과는 다를수 있습니다.)
p.s 동티모르 관련 자료는 경북대학교 도서관 -> '동티모르' 검색하시면 관련 책이 있습니다.
세계의 빈곤, 그 부정의 변증법
('세계에서 빈곤을 없애는 30가지 방법'을 읽고)
박형락
인간은 누구나 더 나은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 삶이란, 진동과 진동이 마주하는 상호관계 속에서 생기는 따스한 열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인간은 더 나은 이상을 향해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한다. 큰 틀로 봤을 때 자연과 소통하려고 하였고 자연과 인간 사이의 소통에 대해 중간적 입장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신화를 통해 신과 인간의 관계를 구성하기도 하였고 심지어 이러한 구성이 신을 대신한 인간과 인간의 관계로 변형해 놓기도 했다. 인간의 발전은 초창기 모계사회를 중심으로 한 평등한 부족사회에서 사유재산이 생겨났다. 그리고 사유재산을 통한 빈부가 생겨나고 이에 따른 개인과 개인의 대립이 생겨났다. 시간이 흘러가면 갈수록 빈부격차가 커지게 되면서 사유재산이 큰 사람은 작은 사람을 잠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큰 사람을 중심으로 큰 세력이 형성하게 되었다. 점점 큰 세력과 큰 세력이 서로 잠식하기 위해 대립을 할 것이다. 서로의 대립에서 승리한 쪽은 처음에는 난폭하게 죽음을 준다고 하더라고 경제적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합리하다. 따라서 생겨난 것이 노예제도다. 노예제도는 굉장히 그들의 입장에서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승리를 한 큰 세력은 하나의 국가로 존재한다. 계급으로 나뉜 탄탄한 중세시대의 모델이기도 하다. 그런데 하층민 사이에서 의문을 품게 된다. 같은 인간이 서로 다른 삶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하게 된 것이다. 신과 인간의 관계 즉 신화라는 도구적 장치가 계몽을 통해 무너지지는 않지만, 이러한 신화는 관념 속에 서서히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문예사조에서 일컫는 계몽주의는 프랑스 혁명을 몰고 가게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뒤엎지는 못했다. 신화라는 도구적 장치는 여전히 우리에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계몽이 낳은 과학 만능은 다시금 도구로서 우리를 존재케 하기 때문이다. 낭만, 상상, 환상을 부여하기에는 우리에게 너무 큰 거리감이 생기게 된다. '인간의 삶'은 항상 발전할 것이라는 인간의 믿음은, 상부에서의 분위기 조작으로 튼튼히 다져간다. 문화 비평이 없는 세상, 인문학을 멀리하는 세상이 오면서 이러한 믿음은 커져간다. 그런데 아직까지 세상은 불공평하게 우리를 이끈다. 인간은 도구적 존재가 된지 이미 오래이며 너무 오래다 보니 우리 스스로 느끼지도 못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부정되고 부정되어야만 하는 모순의 골속에서 썩어가고 있는 데도 말이다.
이 책에서 나에게 낯익은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바로 공정무역이다. 노동력을 착취하여 싼값으로 원재료를 판매하기 때문에 우리가 값싸게 먹을 수 있다. 물론 값싼 초콜렛은 진짜 카카오라고 하기 힘들 정도로 만들어진 가공 초콜렛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정당하게 노동력에 대한 값을 주고 구매하여 소비자에게 양심적으로 파는 공정무역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세계는 이렇게 많은 노약자들이 공정무역의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웰빙 열풍이 일어나면서 유기농 채소와 함께 공정무역이 알려졌다고 한다. 따라서 아직까지는 공정무역에 대한 정확한 소비자 인식이 부족하다. 대학교의 경우 이화여대와 경북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소개되었다. 당시 반응은 상당히 좋았는데 다만 걸림돌은 가격이었다. 정당하게 구매하고 판매를 하다 보니 가격이 시중가격에 비해 무척이나 비쌌다. 학교 축제기간에 행사 제품이어서 학생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으나 정작 소비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갈수 없는 물건이 아닌가 하고 생각 되어졌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책은 국외의 빈곤자들에 대한 연민의 시각으로 국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나는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해결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힘든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비싼 가격으로 구매를 하면 자연히 소비자 물가가 올라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서민층의 허리는 안 그래도 휘어져있는데 확인 사살하는 거랑 다를 바 없다. 대기업 입장에서도 분명 질이 좋고 값싼 초콜렛을 생산하고 거기에 공정무역이라면 더욱이 회사 이미지 상승이라는 시너지 효과까지 얻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쳐 있었기 때문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사줘야 더욱 큰 이익이니까 말이다. 따라서 생협이나 NGO 같이 소규모가 연합을 해서 공정무역을 하는 것에 그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을 자본주의로 향하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자본주의의 뒤엎지 않는 한 완전한 해결을 불가능 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될 것이고 이는 자본주의 비난의 선봉 또는 초석이 되는 발판을 마련하는 구실이 되는 셈이다.
이 책에서 해결책을 주장하는데 있어서 걸림돌은 국가와 대기업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국가와 대기업간의 밀착관계는 시대의 흐름과 맞물린다. 국가의 경우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빌려준 차관은 국가 이익을 넘어서 착취의 수단일 뿐이다. 이젠 국가마저도 도구화 되어버린 세상이 되었다. 또한 대기업은 세금을 피하기 위해 다국적 기업으로 변신한다. 단순히 세계 시장을 넓히는 목적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세금 회피가 있었다. 다국적 기업과 국가의 만남으로 가난한 나라는 착취의 수단이 되었다. 착취의 방법은 날카로웠다. 원조 또는 구호라는 이유로 필요한 물질을 빌려주거나 무상으로 기부를 한다. 분명 가난한 국가 입장에서는 도움을 받으니 좋겠지만 실제는 그러하지 못하다는 것에 주목해야 했다. 도움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자립할 수 있는 능력과 기반이 떨어지게 된다. 물질 문명이 발달함과 동시에 인간의 정신이 따라 와야하는 데 그러하지 못하다 보니 인간의 정신은 난민이 되어버린 것이다. 자립 할 수 없는 국가는 결국 선진국가 또는 대기업에 의존하게 되고 국민의 희생을 요구하게 된다. 사실상 19세기말의 식민지 상황이나 다를바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나는 또한 이러한 부도덕을 감수 하면서 까지 상생하는 것이 아닌 이용, 착취의 길을 가게된 국가의 모습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이 책에 언급된 일본이라는 나라는 부족한 자원에 골머리를 앓았다. 그 뿐만 아니라 일본의 경제는 버블경제를 겪은 상황이다. 자원이 줄어 들게되고 국민이 요구하는 경제 성장률을 따라가려면 국가적 차원에서 소위 말해 돈벌이 그리고 자원 확보가 절실했던 것이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다시 국민에게 돌아 갈수 밖에 없는 역사적 사실과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채 원점으로 돌아 갈 수 밖에 없다.
궁극적인 해결책은 실천, 행동이었다. 행동의 변화는 국가와 대기업도 어쩔 수 없이 변화하기 마련이다. 이 책은 행동의 변화를 위해 실천을 강조했다. 사람들이 의문시하고 의아해 하는 일을 서슴지 않고 실천한다면 얼마나 우리들에게도 그들을 도움으로써 어떠한 것을 얻어갈 수 있는지를 절실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면 논점이 흐려질 수 있으나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인간의 실천과 행동의 깨달음은 무지에서 벗어나 계몽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계몽은 신화를 벗어나 체험을 통해 느껴야 하며 자신이 눈앞에 당면한 문제를 소외적인 관점에서 비판을 하지 않는 이상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감정 이입이 되고 만다. 따라서 실천과 행동을 위해 자신이 그 무대의 등장인물이 되어 연극을 하는 것이다. 관객도 없고 조명이나 무대장치 마저 없다. 단순히 연극할 줄 모르는 연기하는 자들만이 존재한다. 그들은 연기를 하면서 서서히 연극 속의 등장인물을 비판하기 시작한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참여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실천 해야 하고 행동 해야 하는 지를 스스로 깨닫기를 원하고 있다. 아이들이 노숙자의 체험을 통해 노숙자의 감정을 누군가의 의도를 통한 감정이입에서 벗어나 스스로 비판하고 진실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물질이 아니더라도 빈곤 국가가 원하는 꿈을 교류를 통해 알아내고 자립할 수 있도록 하여 서로가 사생하는 삶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서술되어 있다.
물질이 무조건 발달한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우리 현실에 절실하게 다가 오고 있다. 이 책에서 대기업과 선진 국가들의 착취로 인해 피해를 받는 주민들의 말들 중 자신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자기 자신들만의 행복한 꿈을 향해 달리는 것이었다. 이미 대학생들에게 뿌리깊게 인식되어진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은 어쩌면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 서로가 상생의 길을 찾아 행복이 가득한 진정한 세계를 찾기 위해 허우적 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들의 조그마한 실천부터 생각의 변화 그리고 행동의 변화에 이어 참여까지 우리가 해야 할 해결책은 이제 과제가 되어버렸다. 이번 동티모르 해외 봉사는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나 자신이 아니라 서로의 팀워크와 함께 현지인들을 이해하고 도와주면서 그들이 원하는 행복을 찾아 주고 우리들이 원하는 희망을 전해주면서 서로가 웃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무조건 적인 도움이 아니라 상대방의 문화를 인정하고 그들만의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주면 훗날 역사에서도 또 다른 비판이 아닌 진정한 합일의 세상이 오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이 든다.
p.s 불펌하지마시고 의견은 댓글 부탁해요~~ (동티모르가기전 작성한 글로 사진은 직접 찍었으나 내용과는 다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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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8:17
2009년 7월 7일 화요일
Faust 짧은 감상문
Faust 짧은 감상문
과목 : 미국문학개관
담당교수 : 박연옥 교수님
작성자 : 2006006015 박형락
담당교수 : 박연옥 교수님
작성자 : 2006006015 박형락
Verweile doch, du bist so schön! - Goethe
갑자기 감상문을 작성 하라는 교수님의 말씀에 허겁지겁 감상문을 작성하게 되어 글을 쓰는 입장에서 욕심에서인지 몰라도 작품을 한번더 읽어야 되는데 하는 아쉬움이 강하게 묻어난다. 미국문학은 아니지만 나름 낭만주의, 고전주의 하면 괴테이기에 나름 억지지만 의미를 부여하고 감상문을 쓰겠다. Faust는 괴테의 필작이다. 하지만 다소 지루하고 고전주의에 의해 다소 교훈성이 너무 짙어 재미가 없다. 다만 우리 현실과 함께 비추어 의미를 새겨보면 이 책의 진수를 느끼지 않을 까하는 생각이 든다. 내용은 독일작품 양철북이나 나누어진 하늘 보다 읽기 지루 했지만 그래도 고전 작품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해서인지 몰라도 해석하기는 쉬었다. 예를 들어 양철북은 Faust보다 방대하지만 읽기는 쉬운대 막상 해석하자니 문장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되어서 개인적으로 나름 분석한다면 책 1권은 만들 수 있을거 같았다. 하지만 Faust는 해석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다만 여러 가지 논란이 있는 부분이 많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리저리 해석 해도 다 맞는 거 같은 느낌을 준다. 비평이 아닌 감상문을 적기에 간략하게 소개하는 방식으로 하겠다. 다만 여기에 나온 해석은 여러 논문과 책을 인용한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 나의 생각을 적은 것이기에 참고문헌은 생략하겠다.처음에는 헌사가 나온다. 여기에서는 Faust의 집필한 소감이 나온다. 그 뒤를 이어 무대를 배경으로 하여 시인과 광대 그리고 극장장이 나온다. 여기서 시인은 순수한 예술을 추구하려고 하고 극장장은 돈벌이에 급급하다. 그리고 광대의 경우 이러한 순수 예술과 돈벌이와의 조화를 추구하는 사상이 나타난다. 이 뒤에 있을 Faust의 내용으로 비추어보아 이러한 3명 인물의 논쟁을 통한 해결책은 인간 본연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순수예술 그리고 상업성의 조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다음 이야기는 천상을 배경으로 한다. 천상에서 주님과 Mephistopheles가 지상의 인간 Faust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악마는 인간은 아무것도 만족할 줄 모르고 비참하게 살아가는 존재로서 관능적 향락과 욕망의 충족으로 유혹하여 지옥으로 끌어갈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주님은 인간이 노력하는 동안 방황하며 그러한 상황 속에서 올바른 길을 알게 되고 밝은 곳으로 인도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주님이 말한 인간의 존재에 대한 설명에서 변증법적인 논리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흔히 정반합이라고 불리는 이 사상은 일반적인 예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내용이지만 이 희곡에서는 인간에 대해 직접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하다.
그리고 본격적인 비극 제 1부가 시작된다. 우주의 본질과 창조의 원리를 규명하기 위해 모든 학문을 섭렵하지만 우주 일체의 궁극적 진리를 파악하는 데 실패하고 절망한다. 또한 여러 가지 초인간적 경지에 도달하고자 시도하는데 실패한다. 이에 인간 본연의 한계를 인식하고 영혼으로서 이루고자 자살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때마침 부활절 행사의 종소리에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자연적인 삶의 의미를 되찾는다. 부활절 행사 참석 후에 Mephistopheles와 만나게 된다. 악마는 Faust의 욕망을 만족시켜주겠다고 약속하며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라고 말하면 영혼을 가져가기로 약속한다. 이는 저명한 학자가 마술 즉 악의 힘과 향락을 추구하려는 모습에서 학자의 비극이 나타난다. 그는 Mephistopheles를 통해 마녀의 부엌에서 본 여자의 모습에 놀란 Faust는 악마의 마술에 의해 젊어지게 된다. 그리고 순결한 처녀 Gretchen을 만나며 육감적 사랑을 추구하는데 진실한 사랑으로 발전하게 된다. 또한 Gretchen도 소시민적인 사랑을 추구하다가 적극적인 사랑의 노예가 된다. 앞으로도 계속 나타나는 부분인데 미리 언급하자면 악마가 생각하는 즐거움에 대한 이상과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이상적인 즐거움이 상반된다. 그래서 악마의 마술이 Faust의 사랑놀이를 위해 어머니가 살해된다. 이에 그녀의 오빠와 Faust와의 결투는 피할 수 없게 되고 Faust가 승리하도록 악마가 마술을 부린다. 죄책감에 사로잡힌 Gretchen은 정신이상으로 아이를 죽이게 되고 감옥에 갇힌다. Faust가 악마의 힘으로 탈출하러하지만 순수한 Gretchen은 악마의 힘에 도움 받지 아니하고 신의 심판을 받으려한다. 이에 천상에서는 심판 대신 구원을 선택한다. 이러한 비극은 학문 대신 관능적 사랑을 통해 만족을 얻으려다가 소녀의 일가족을 몰살시키게 됨을 보여준다. 또한 여기서 나오는 ‘발푸르기스의 밤’은 악마가 인간에게 성적인 것으로 모든 것을 잊게 하려는 시도를 보여주는 데 이것은 인간 본연의 정신을 흔들지 못함을 보여준다.
1장과는 다르게 개인의 영역에서 인간의 정신, 종교, 철학, 학문과 예술, 국가생활과 문화생활 속에 정립한 보다 심오하고 포괄적인 가치의 영역으로 상승한다. Faust는 아픔과 상처 속에서 어느 시공간 속의 체험을 통해 기운을 차리고 봉건제국 황제의 국정으로 간다. 여기서 지하의 보물을 담보로 지폐를 발행하여 궁정의 재정난을 해결하고 그곳에서 전개되는 정치판에 끼어든다. 실권 없는 비극적 황제의 총애를 받으며 그는 막강한 권력과 많은 재산을 소유하지만 만족하지 못한다. Faust는 학자이기 때문에 잘 알 것인데 상징적인 보물이 실질적인 화폐에 대한 담보는 사실상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즉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 때문에 Faust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모든 면에서 만족할 수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황제는 Faust에게 헬레나를 불러내라고 하는데 악마의 힘을 빌려 모습을 드러내게 한다. Faust는 다시 그녀의 모습에 매료된다. 그래서 그녀를 껴안으려하고 악마가 준 열쇠가 파리스 상에 대자 폭발로써 그는 옛날 연구실로 옮겨진다. Faust는 옛 조수 바그너를 만난다. 그는 인조인간인 호문쿨루스를 만든다. 호문쿨루스는 Faust와는 다르게 진정한 인간의 육체를 원한다. 따라서 그가 만들어준 바그너를 버린 채 Faust와 함께 서로의 고민과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믿는 남쪽 세계 즉 고대 그리스로 향한다. 물과 불의 원소 논쟁이 여기서 나타나는데 불보다 물이 인간의 근원으로 나온다. 따라서 호문쿨루스는 프로테우스에게 가서 인간이 될 것을 청하지만 거절당한다. 이에 프로테우스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감각과 정신이 분열되어있는 고집스럽고 지혜도 없어 허무를 추구하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결국 불속의 인조인간은 자신의 이상에 도달하지 못한 채 바다 속에서 물의 존재의 갈라테아와 결합하게 된다. 한편 Mephistopheles는 헬레나를 탈취하려하고 Faust는 트로이 전쟁에 게르만 침입군의 수령으로 참전한다. Faust는 악마에 의해 헬레나와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낳은 아이는 너무 활동적이어서 암벽위에 뛰다 부모 앞에 떨어져 죽고 동시에 어머니 헬레나도 옷을 남긴 채 저승으로 간다. 여기에 Faust는 절망하게 된다. Faust는 악마의 힘으로 무너져 가는 봉건 질서의 황제를 마술을 이용하여 도왔으나 그 공을 오히려 공을 세운 자들과는 먼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또한 황제는 악마의 힘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신성모독이라고 협박하는 대주교에게 돈과 토지를 바친다. Faust는 개간지 사업을 한다. 예전에는 아무 근심 없이 온갖 욕망에 사로잡혀 소원하고 즐기면서 인생을 살았으나 Faust는 이제 내세를 단념한 태 근심에 싸여 있더라도 현명하게 지상세계에 몰두하며 공익을 위해 행동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 속에서 노동자들을 착취한다. 그리고 개간 사업을 위한 자금을 위해 Mephistopheles의 해적질을 방관한다. 또한 개간지 주변인들을 몰아내기 까지 한다. 물론 Faust는 착취가 아닌 모두를 위한 공공의 사업 즉 교환을 원한다. 하지만 Faust는 이미 악의 힘에 빠져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죄를 묵인할 수 없다. Faust는 근심이라는 요녀에 의해 눈이 멀게 되는데 이로 인해 마음의 눈으로 자신이 계획하고 있는 개간지 사업을 상상한다. 인류의 문화생활을 위한 사업에 몰두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으면서 행복한 예감에 젖은 그는 드디어 만족감을 느끼며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라고 하며 악마와의 계약대로 죽게 된다. 그리고 악마가 Faust의 영혼을 가지러 갈 때 천사가 영혼을 뺏어낸다. 그리고 속죄하는 여인으로 다시 등장한 Gretchen이 옛 애인의 구원을 위한 은총을 빌며 성모는 Faust의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면서 끝이 난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눈여겨 볼점은 Faust의 이상이 실현된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실현직전에서 하늘나라로 갔기 때문이다. 여기서 낭만주의가 생각난다. 인간은 결국 하늘을 닿고 싶어했지만 결국 닿지 못하고 죽어버린 청개구리처럼...
비록 독일문학에 관심은 많지만 고전을 읽는 것은 개인적으로 억지로 읽는 감이 없지 않았다. 특히 방대한 분량은 소설 ‘양철북’ 다음으로 힘들고 분석하기가 어려웠다. 개인적으로 간략한 감상문이라 마음껏 발제지나 비평문처럼 장황하게 설명하기 힘들어 마음껏 내 스스로 표현할수 없다는 점에 애석하기만하다. 또한 막상 감상문을 이렇게 기본적 서론에 간략한 줄거리에다가 조금 생각을 덧붙이고 마지막에 느낌을 썼는데 지금 이렇게 결론을 쓰고 있으면서 나눈거부터 시작해서 그냥 감상문이 아닌 비평문을 썼어야 했다는 아쉬움 감이 자꾸 든다. 어쨌는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무언가 의문점이 들었다. 글의 전체적인 구조가 짜 맞추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완독이라도 해야 했기 때문에 TV 연속극 보듯이 하루에 한 Scene씩 나눠서 길게 읽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괴테는 Faust를 수년간 집필하면서 수정을 반복했고 작성 과정에서 앞뒤가 맞지 않아 연관 관계를 이끌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이렇듯 괴테의 일생 최대 작업인 만큼 무언가를 전달하려고 한 게 너무 많은듯하다. 그리고 가장 당혹 스러운것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원소 론에 대한 문제이다. 이는 인조인간 이야기에서 나오는 부분인데 모든 생명의 시작과 근원이 불, 물에 대한 논쟁이다. 결국은 물의 승리로 끝나는데 이는 괴테가 물을 지지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고대 신화를 많이 차용했는데 그래서인지 충분한 지식이 없으면 읽기가 무척 어려웠다. 그리고 책의 집중이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느 신화의 인물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겠는데 그 인물에 대해서 알고 나면 알 수 있는 내용들이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의 내용 중에서 정말 낯익은 글들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셰익스피어의 A Midsummer Night Dream의 인물들과 상황이 나온 것이다. 처음에는 고전주의의 형향을 받아서 그런 게 아닌가 싶었는데 신화외의 요정 Puck이 나오는 부분에서 괴테가 셰익스피어의 내용을 차용했다는 확신을 했다. 여기서 생각한 것은 과연 괴테는 셰익스피어의 글을 어떻게 해석 했느냐에 의문을 던졌다. 하지만 필자의 실력과 수준으로는 더 이상 접근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Faust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과 함께 괴테가 Faust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즉 그의 사상이 깃들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데 그 당시의 괴테의 궁극적 하고싶은일이 마지막 Act에 나온 간척과 수로 사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즉 복지를 위해서 모든 이를 위해서 작업을 벌이는 일이다. 하지만 여기에 따른 노동착취와 환경문제도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인물적인 측면에서도 Faust는 평범한 인간들 사이에서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다. 남부럽지 않은 부귀와 명예가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추구함으로써 이야기는 시작된다. 우리 인간의 가장 하고 픈 욕망 즉 지배권과 아름다운 현실속의 여자와 신화속의 여자 그리고 상황이 불리해도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 모든 소원을 다 들어주는 보좌관, 젊음, 육체적 욕망, 정신적 욕망 등등 이 모든 것들을 Faust는 경험한다. Faust를 읽으면서 괴테의 사상과 함께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대리만족 시켜주고 거기서 얻게 되는 성공과 좌절을 알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불펌 금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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